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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곡약방

 성지소개  성지갤러리  찾아가는 길

▣ 성지명 : 동곡약방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 마을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전주군 우림면 동곡리

▣ 지명의 유래와 역사

동곡약방은 선천 상극시대를 개벽해 후천 상생의 새로운 시대를 여시고자 천지공사를 행하신 상제님께서 뜻하시는 바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종단의 성지이자 인류의 성역이다.
약방이 설치된 장소는 종도 김준상의 집이다.
1908년 초 동곡에 살고 있던 김준상의 아내는 발바닥(용천혈)에 난 종창으로 죽을 고생을 하며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병이 낫지 않아 체념하다가 제생의 기적을 보여주시는 상제님께 간절히 빌며 병 치료를 구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그녀의 병을 쉽게 고쳐주신 후 보답 대신 김준상의 집 방 한 칸을 빌려 약방을 설치하셨다.
박공우를 통해 백남신으로부터 가져오신 돈 천냥으로 방을 수리해 약장과 기구를 비치하시고 김병욱에게는 전주에서 약재를 사오게 하시어 약방에 사용하셨다.

상제님께서는 약방을 설치하신 후 「원형이정 봉천지 도술약국 재전주동곡 생사판단(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判斷)」의 글귀를 쓰시고 불사르시는 공사를 행하셨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생장염장의 사의(四義)와 부합되며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자연 법리라고도 할 수 있다. 원(元)은 모든 만물의 시작을 뜻하며 형(亨)은 만물이 모두 뻗어서 생장하는 것이고 이(利)는 만물이 모두 그 뿌린대로 결실을 얻는 것이며 정(貞)은 만물이 모두 따라야 할 항구적인 도(道)로써 근본 즉 원(元)이 될 수 있는 근거라고 볼 수 있다.

「봉천지 도술약국(奉天地 道術藥局)」은 만물이 원형이정의 법리로써 작용하여 나타난 천지를 받든다는 의미로 볼 수 있고 도술(道術)은 법리에 따라서 조화를 일으키는 묘법을 말함이며 약국(藥局)은 선천의 상극을 상생으로 바꾸고 천지도수를 바로 잡아주는 우주의 약국이다.

「재전주동곡 생사판단(在全州銅谷 生死判斷)」은 우주 생사판단의 장소는 천지만물을 다시 생기(生氣)가 도는 조화선경으로 만들 수 있는 장소이고 이 장소를 상제님께서는 전주에 있는 동곡에 설치하셨다는 뜻이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 상제님 행적

상도(常道)를 잃어 진멸(盡滅)의 위기에 빠져버린 인류를 광제(廣濟)하시고자 인간의 몸으로 강세하신 상제님께서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시는 권능으로 천하를 대순하시니 현하의 세계정세가 위기상황인 것이다. 위기의 원인은 세상이 상도를 잃은 무도병(無道病)에 빠졌기 때문이며 그 병(病)의 원인은 『 세무충 세무효 세무열 시고천하개병(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 : 세상에 충이 없고, 효가 없고 열이 없다. 이 때문에 천하가 모두 병들었다.』(행록 5장 38절)라고 하셨다.
세상에 바른 도리가 사라졌기 때문에 삼계가 모두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크고 작은 모든 병에는 이에 맞는 약을 써야 낫게 된다고 하셨으니 그 약이란 곧 음양합덕(陰陽合德)·신인조화(神人調化)·해원상생(解寃相生)·도통진경(道通眞境)의 진리에 의한 종교적 법리이다. 이를 통해 삼계는 진정한 의미의 구원(救援)과 광제(廣濟)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만국의원(萬國醫員)이다.

죽은 자를 살리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그 밖에 모든 질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그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알아야 하며 어떠한 병이라도 고칠 수 있는 권능이 있어야만 한다.
상제님께서 동곡에 설치하신 약방은 우주 전체의 생사판단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도술약국이며 만국의원(萬國醫院)인 것이니 이를 통해 전 인류가 처한 병세의 원인을 진단하시고, 구체적 치료방법으로 종교적 법리를 제시하시며 세상을 다시금 살리시는 대공사를 처결하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동곡약방에 계시면서 태양을 멈추는 삼계대권의 권능과 죽은 자를 살리시고 각종 질병을 낫게 하시는 제생의 기적을 보이시며 인류와 세계의 겁액을 벗기고 후천선경의 새로운 운로를 여시는 수많은 천지공사를 행하신 후 1909년 6월에 이곳에서 화천하셨다.

동곡약방의 복원

2003년 종단에서는 동곡약방과 인근 부지를 매입했다.
그동안 동곡약방은 거주인이 몇 차례 바뀌며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종단에서 약방을 매입하기 직전에는 전체 가옥이 크게 퇴락해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종단에서는 꾸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약방 가옥의 원형을 고증한 후 전통 한옥 건축에 필요한 자재와 장비를 준비해 복원을 시작했다.
2005년 5월 22일(음 4월 15일)에 상량식을 갖고 복원공사를 시작한 지 100여 일 만에 복원을 완료했다. 9월 1일(음 7월 28일)에는 복원 기념식을 가졌다.

동곡약방의 전체 규모는 대지가 약 600평에 이른다. 약방으로 사용된 가옥이 약 13평이고 새롭게 지은 관리동이 약 13.5평의 규모이다. 약방 뒤편은 상제님께서 식수하셨다고 알려진 대나무 밭이다.
약방으로 사용된 본 가옥은 복원공사 당시 낡고 변형된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상제님 친필이 새겨진 기둥과 약방 가옥의 설립 연대를 알 수 있는 대들보를 남겨 원형을 보존하고 나머지를 모두 새롭게 지었다.
김준상의 집 오른 편으로는 동생인 김갑칠의 집이 있었는데 그동안 김갑칠의 집을 약방에 딸린 정원으로 사용하다가 복원공사를 하며 그 자리에 관리동을 지었다. 약방 옆의 공터에는 복원과 함께 인류구원의 천지공사를 행하신 상제님의 큰 은혜를 기리는 기념 비문을 세웠다.
지금 동곡약방은 볏짚을 엮어 만든 초가지붕과 대들보, 온돌 구들 및 나무 굴뚝까지 만들어 상제님 공사 당시의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전통 초가의 소박하고 정겨운 아름다움과 천지공사의 위대한 역사가 살아있는 성역으로 단장을 마쳤다.
상제님께서 전무후무한 대도의 진리를 세상에 펴시고 화천하신 이후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을 종지로 한 종단 대순진리회의 도인들이 성경신을 다하여 약방의 복원을 마치고 비로소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보시던 그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관련 <전경> 구절

약방의 설치
제생 21. 김 갑칠의 형수가 발가락의 종창으로 죽을 고생을 당하고 있는지라. 상제께서 소식을 들으시고「그 환부가 용천혈(龍泉穴)이니 살기 어려우리라. 준상(俊相)과 갑칠은 오늘 밤 서로 번갈아 환자를 잠에 들지 못하게 하면서 밤을 새우라. 명부 사자와 나의 사자중 누가 강한가 보리라」고 말씀하셨도다. 두 사람은 명을 좇았으나 환자는 한때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정신이 혼몽하고 위독하여 지다가 날이 밝으니 차차 정신을 차리는지라. 그제서야 상제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근심을 놓게 하시고 쌀뜨물을 환부에 바르고 백냥이 있어야 되겠다고 하시면서 돈을 청하셨도다. 준상이「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가옥을 방매하여야 되겠나이다」고 여쭈어 난색을 보이므로 상제께서 그의 집을 상제께 팔게 하시니 준상이 기꺼이 승락하기에 상제께서 그로부터 가옥 매도 문서를 받아가지고 계시다가 잠시 후에 그것을 불사르고 준상을 그 집에서 눌러 살게 하고 방 한 간을 빌려서 수리하여 약방으로 쓰셨도다.

공사 2-7. 상제께서 정미년 四월 어느날 돈 천냥을 백 남신으로부터 가져오셔서 동곡에 약방을 차리시는데 이때 약장과 모든 기구를 비치하시기 위하여 목수 이 경문(李京文)을 불러 그 크기의 치수와 만드는 법을 일일이 가르치고 기한을 정하여 끝마치게 하시니 약방은 갑칠의 형 준상의 집에 설치하기로 하셨도다.

공사 2-8. 목수가 기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였기에 상제께서 목수로 하여금 목재를 한곳에 모아놓게 하고 앞에 꿇어앉힌 후 크게 꾸짖고 봉서 하나를 목수에게 주고 꿇어앉은 그대로 불사르게 하시니 갑자기 번개가 번쩍이는지라. 목수가 두려워서 땀을 흘리는 것을 보고「속히 마치라」독려하시니라. 그 목수가 수전증이 나서 한 달이 넘은 후에 겨우 일을 끝내니라. 약방을 차린 후 상제께서 공우에게「천지의 약기운은 평양에 내렸으니 네가 평양에 가서 당제약을 구하여 오라」고 명하셨도다. 그후에 다시 그에 대한 말씀이 없으시고 그날 밤에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공사 2-9. 약방을 설치하신 후「원형이정 봉천지 도술약국 재전주동국 생사판단(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判斷)」이란 글귀를 쓰셔서 불사르셨도다. 약장은 종삼 횡오 도합 십 오 간으로 하고 가운데에 큰 간이 둘 아래로 큰 간이 하나이니라. 상제께서는 그 위 십 오 간 중의 가운데 간에「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쓰고 그 속에 목단피를 넣고 그 아래에「열풍 뇌우 불미(烈風雷雨不迷)」라고 횡서하고 또 칠성경을 백지에 종서하고 그 끝에「우보 상최 등양명(禹步相催登陽明)」이라 횡서하고 약장 위로부터 뒤로 밑판까지 따라서 내려 붙이고 그 위에「양정 유월 이십일 음정 유월 이십일(陽丁六月卄日陰丁六月卄日)」이라 쓰시니라. 궤안에「팔문둔갑(八門遁甲)」이라 쓰고 그 글자 위에「설문(舌門)」두 자를 낙인하신 후 그 글자 주위에는 二十四점을 홍색으로 찍고 약방에 통감(通鑑)・서전(書傳) 각 한질씩 비치하셨도다.

공사 2-10. 상제께서 병욱에게 명하시어 전주에 가서 삼백냥으로 약재를 사오게 하셨는데 마침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이 비는 곧 약탕수(藥湯水)라고 이르셨도다.

공사 3-3. 상제께서 어느날 공우에게「고부에 가서 돈을 주선하여오라」하시더니 마련된 돈으로써 약방의 수리를 끝마치시고 갑칠로 하여금 활 한 개와 화살 아홉 개를 만들게 하고 그것으로써 공우로 하여금 지천(紙天)을 쏘아 맞추게 하시고 가라사대「이제 구천을 맞췄노라」하시고 또 말씀을 잇기를「고부 돈으로 약방을 수리한 것은 선인포전(仙人布氈)의 기운을 쓴 것이니라」하셨도다.

권능을 보이심
권지 1-27. 상제께서 약방에 계시던 겨울 어느날 이른 아침에 해가 앞산 봉우리에 반쯤 떠오르는 것을 보시고 종도들에게 말씀하시니라.「이제 난국에 제하여 태양을 멈추는 권능을 갖지 못하고 어찌 세태를 안정시킬 뜻을 품으랴. 내 이제 시험하여 보리라」하시고 담배를 물에 축여서 세 대를 연달아 피우시니 떠오르던 해가 산 머리를 솟지 못하는지라. 그리고 나서 상제께서 웃으며 담뱃대를 땅에 던지시니 그제야 멈췄던 해가 다시 솟았도다.

권지 1-22. 상제께서 청도원(淸道院)에서 동곡에 돌아와 계시던 어느날「풍・운・우・로・상・설・뇌・전(風雲雨露霜雪雷電)을 이루기는 쉬우나 오직 눈이 내린 뒤에 비를 내리고 비를 내린 뒤에 서리를 오게 하기는 천지의 조화로써도 어려운 법이라」말씀하시고 다시「내가 오늘 밤에 이와 같이 행하리라」 이르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라. 과연 눈이 내린 뒤에 비가 오고 비가 개이자 서리가 내렸도다.

제생의 의술을 베푸심
권지 2-12. 황 응종의 아들이 병으로 위급하게 되었기에 응종이 청수를 떠놓고 멀리 상제가 계신 곳을 향하여 구하여 주실 것을 두 손을 모아 발원하였더니 아들의 병세가 나으니라. 이튿날 응종이 동곡 약방으로 가서 상제께 배알하니 가라사대「내가 어제 구름 속에서 내려다 보니 네가 손을 모으고 있었으니 무슨 연고이냐」고 물으시므로 응종이 사유를 자세히 아뢰었더니 상제께서 웃으셨도다.

제생 9. 상제께서 동곡에 머무실 때 그 동리의 주막집 주인 김 사명(金士明)은 그의 아들 성옥(成玉)이 급병으로 죽은 것을 한나절이 넘도록 살리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도저히 살 가망이 보이지 않자 아이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업고 동곡 약방으로 찾아 왔도다. 상제께서 미리 아시고「약방의 운이 비색하여 죽은 자를 업고 오는도다」고 말씀하시니라. 성옥의 모는 시체를 상제 앞에 눕히고 눈물을 흘리면서 살려주시기를 애원하므로 상제께서 웃으시며 죽은 아이를 무릎 위에 눕히고 배를 밀어내리시며 허공을 향하여「미수(眉叟)를 시켜 우암(尤菴)을 불러라」고 외치고 침을 흘려 죽은 아이의 입에 넣어주시니 그 아이는 곧 항문으로부터 시추물을 쏟고 소리를 치며 깨어나니라. 그리고 그 아이는 미음을 받아마시고 나서 걸어서 제 집으로 돌아가니라.

제생 10. 김 창여(金昌汝)가 동곡에서 살았는데 여러해 동안 체증으로 고생하던 중 어느날 상제를 찾아 자기 병을 보아주시기를 애원하니라. 상제께서 그를 평상 위에 눕히고 배를 만지면서 형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글을 읽게 하였더니 창여(昌汝)는 체증으로부터 제생되었도다.
   調來天下八字曲  淚流人間三月雨
   葵花細忱能補袞  萍水浮踵頻泣玦
   一年明月壬戌秋  萬里雲迷太乙宮
   淸音鮫舞二客簫  往劫烏飛三國塵   

제생 14. 동곡 김 갑진(金甲辰)은 문둥병으로 얼굴이 붓고 눈섭이 빠지므로 어느날 상제를 찾고 치병을 청원하였도다. 상제께서 갑진을 문바깥에서 방쪽을 향하여 서게하고 형렬과 그외 몇 사람에게 대학 우경 일장을 읽게 하시니라. 십여분 지나서 갑진을 돌려보내셨도다. 이때부터 몸이 상쾌하여 지더니 얼마 후에 부기가 내리고 병이 멎었도다.

제생 21. 김 갑칠의 형수가 발가락의 종창으로 죽을 고생을 당하고 있는지라. 상제께서 소식을 들으시고「그 환부가 용천혈(龍泉穴)이니 살기 어려우리라. 준상(俊相)과 갑칠은 오늘 밤 서로 번갈아 환자를 잠에 들지 못하게 하면서 밤을 새우라. 명부 사자와 나의 사자중 누가 강한가 보리라」고 말씀하셨도다. 두 사람은 명을 좇았으나 환자는 한때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정신이 혼몽하고 위독하여 지다가 날이 밝으니 차차 정신을 차리는지라. 그제서야 상제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근심을 놓게 하시고 쌀뜨물을 환부에 바르고 백냥이 있어야 되겠다고 하시면서 돈을 청하셨도다. 준상이「집안이 워낙 가난하여 가옥을 방매하여야 되겠나이다」고 여쭈어 난색을 보이므로 상제께서 그의 집을 상제께 팔게 하시니 준상이 기꺼이 승락하기에 상제께서 그로부터 가옥 매도 문서를 받아가지고 계시다가 잠시 후에 그것을 불사르고 준상을 그 집에서 눌러 살게 하고 방 한 간을 빌려서 수리하여 약방으로 쓰셨도다.

제생 25. 상제께서 두루 다니시다가 동곡 약방에 들러 그곳에 계셨도다. 그 동리에 평양집이 있었는데 이 집의 다섯살 난 아들이 갑자기 앉은뱅이가 되었기 때문에 그 주인이 병을 보아달라고 상제를 찾아오니 상제께서 「아이에게 쇠고기와 참기름을 먹여서 내일 아침에 안고 오너라」고 이르시니라. 평양집이 가난하여 참기름만 먹이고 아이를 안고 와서 아뢰이니 상제께서 아무 말씀 없이 누우시는도다. 주인이 화가나서「차라리 죽어라.」하면서 아이를 마구 때리니 아들이 하도 아프기에 울면서 도망치려고 일어서는지라. 그제서야 평양집이 깨닫고 매우 기뻐하면서 상제께 감사드리며 사과를 드렸더니 상제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었도다.

약방에서 행하신 공사
교운 1-38. 상제께서 동곡에 머물고 계실 때 교운을 펴시니라. 종도 아홉 사람을 벌려 앉히고 갑칠에게 푸른 대(竹)나무를 마음대로 잘라 오게 명하셨도다. 갑칠이 잘라온 대가 모두 열 마디인지라. 그중 한 마디를 끊고 가라사대「이 한 마디는 두목이니 두목은 마음 먹은 대로 왕래하고 유력할 것이며 남은 아홉 마디는 수교자의 수이니라.」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하늘에 별이 몇이나 나타났는가」보라 하셨도다. 갑칠이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더니「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나 복판이 열려서 그 사이에 별 아홉이 반짝입니다」고 아뢰니라. 상제께서「그것은 수교자의 수에 응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2-11. 상제께서는 약방에 갖추어 둔 모든 물목을 기록하여 공우와 광찬에게 주고 가라사대「이 물목기를 금산사에 가지고 가서 그 곳에 봉안한 석가불상을 향하여 그 불상을 업어다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리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불사르라」하시니 두 사람이 금산사에 가서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이로부터 몇 해 지난후에 금산사를 중수할 때 석가불전을 마당 서쪽에 옮겨 세우니 미륵전 앞이 넓어지느니라 이 불전이 오늘날의 대장전이로다.

공사 2-20. 상제께서「선천에서 삼상(三相)의 탓으로 음양이 고르지 못하다」고 하시면서「거주성명 서신사명 좌상 우상 팔판 십 이백 현감 현령 황극 후비소(居住姓名西神司命 左相右相八判十二伯 縣監縣令皇極後妃所)」라 써서 광찬에게「약방의 문지방에 맞추어 보라」고 이르시니라. 그가「맞지 않는다」고 아뢰니「일이 헛 일이라」고 말씀하시기에 경학이「여백을 오려버리고 글자 쓴 곳만 대여보는 것이 옳겠나이다」고 말하기에 그대로 행하니 꼭 맞으니라.

공사 3-10. 상제께서 궤 두 개를 만들어 큰 것을 조화궤라 이름하고 동곡 약방에 두고 작은 것을 둔(遁)궤라 이름하고 공부하실 때에 七十二현(賢)의 七十二둔궤로 쓰시다가 신 경수의 집에 두셨도다. 

공사 3-27. 어느날 상제께서 몇 종도들과 함께 기차기운을 돌리는 공사를 보셨도다. 상제께서는 약방에서 백지 한 권을 가늘게 잘라서 잇은 후 한 끝을 집 앞에 서있는 감나무의 높이에 맞춰서 자르고 그 끝을 약방의 문구멍에 끼어놓고 종이를 방안에서 말아 감으시고 또 한편 원일은 푸른 소나무 가지를 태우고 부채로 부쳤도다. 이 때 집이 몹시 흔들리니 종도들은 모두 놀라서 문밖으로 뛰어나가니라. 상제께서는 종이를 다 감으신 후에 경학을 시켜 그것을 뒷간 보꾹에 달아매고 그 종이에 불을 지피게 하고 빗자루로 부치게 하시니 뒷간이 다 타버리니라. 경학은 상제의 말씀에 따라 다 탔는가를 살피다가 한 조각이 뒷간 옆의 대가지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그것 마저 태웠도다. 이때 상제께서 하늘을 바라보시고「속하도다」고 말씀하시기에 종도들도 따라 하늘을 쳐다보았도다. 햇무리가 서다가 한 쪽이 터지더니 남은 종이 쪽지가 타는데 따라 완전히 서는도다. 이것을 보시고 상제께서「기차 기운을 돌리는 공사라」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28. 태을주가 태인 화호리(禾湖里) 부근 숫구지에 전파되어 동리의 남녀 노소가 다 외우게 되니라. 상제께서 이 소문을 전하여 들으시고「이것은 문 공신의 소치이니라. 아직 때가 이르므로 그 기운을 거두리라」고 말씀하시고 약방 벽상에「기동북이 고수 이서남이 교통(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이라 쓰고 문밖에 있는 반석위에 그림을 그리고 점을 찍고 나서 종이에 태을주와 김 경흔(金京訴)이라 써서 붙이고 일어서서 절하며「내가 김경흔으로부터 받았노라」하시고 칼・붓・먹・부채 한개씩을 반석 위에 벌려 놓으셨도다. 상제께서 종도들에게「뜻이 가는 대로 집으라」하시니 류 찬명은 칼을, 김 형렬은 부채를, 김 자현은 먹을, 한 공숙은 붓을 집으니라. 그리고 상제께서 네 종도를 약방 네 구석에 각각 앉히고 자신은 방가운데 서시고「二七六 九五一 四三八」을 한번 외우시고 종도 세 사람으로 하여금 종이를 종이 돈과 같이 자르게 하고 그것을 벼룻집 속에 채워넣고 남은 한 사람을 시켜 한쪽씩 끄집어 낼 때 등우(鄧禹)를 부르고 끄집어 낸 종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고 또 그 쫑이쪽을 받는 사람도 역시 등우(鄧禹)를 부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받은 그 사람은 역시 청국지면(淸國知面)이라 읽고 다시 먼저와 같이 반복하여 마성(馬成)을 부르고 다음에 일본지면(日本知面)이라 읽고 또 그와 같이 재삼 반복하여 오한(吳漢)을 부르고 다음에 조선지면(朝鮮知面)이라 읽게 하시니라. 이십 팔장과 이십 사장을 마치기까지 종이쪽지를 집으니 벼룻집 속에 넣었던 종이 쪽지가 한 장도 어기지 않았도다.

공사 3-35. 상제께서 하루는 구릿골에서 밤나무로 약패(藥牌)를 만들어 패면(牌面)에다 만국의원(萬國醫院)이라고 글자를 새겨 그 글자획에다 경면주사(鏡面朱砂)를 바르시고 이 약패를 원평(院坪) 길거리에 갖다 세우라고 공우(公又)에게 명하셨도다. 공우가 약패를 갖고 원평으로 가려고 하니라. 상제께서 가라사대「이 약패를 세울 때에 경관이 물으면 대답을 어떻게 하려하느뇨」하시니 공우 여쭈길「만국의원(萬國醫院)을 설치하고 죽은 자를 재생케 하며 눈먼자를 보게 하고 앉은뱅이도 걷게 하며 그밖에 모든 질병을 다 낫게 하리라고 하겠나이다」고 아뢰니「네 말이 옳도다. 그대로 시행하라」하시고 그 약패를 불사르셨도다.

교운 1-61. 어느날 저녁에 상제께서 약방에서 삼십 육만 신과 운장주를 쓰시고 여러 종도들에게「이것을 제각기 소리없이 칠백번씩 외우라」이르셨도다. 그리고 또 상제께서「날마다 바람이 불다가 그치고 학담으로 넘어가니 사람이 많이 죽을까 염려하여 이제 화둔(火遁)을 묻었노라」고 이르셨도다.

행록 5-31. 상제께서 二十三일 오전에 여러 종도들에게 가라사대「이제 때가 바쁘니라. 너희들 가운데 임술생(壬戌生)으로서 누이나 딸이 있거든 수부(首婦)로 내세우라.」형렬이「수부로서 저의 딸을 세우겠나이다」고 아뢰이니 말씀하시기를「세수 시키고 빤 옷으로 갈아입혀서 데려오라」하시니라. 형렬이 명하신 대로 하여 딸을 상제 앞에 데려오니라. 상제께서 종도들로 하여금 약장을 방 한가운데 옮겨 놓게 하시고 그의 딸에게 약장을 세번 돌고 그 옆에 서게 하고 경석에게「대시 태조 출세 제왕 장상 방백 수령 창생점고 후비소(大時太祖出世帝王將相 方伯守令蒼生點考后妃所)」를 쓰라 이르시니라. 경석이 받아 쓸제 비(妃)를 비(妣)로 잘못 쓴지라. 상제께서 그 쓴 종이를 불사르고 다시 쓰게 하여 그것을 약장에 붙이게 하고「이것이 예식이니 너희들이 증인이니라」고 말씀을 끝내고 그의 딸을 돌려보내시니라. 상제께서 경석에게 그 글을 거둬 불사르게 하셨도다.

상제님의 화천
행록 5-22. 상제께서 모든 종도를 꿇어앉히고「나를 믿느냐」고 다짐하시는지라. 종도들이 믿는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다시「내가 죽어도 나를 따르겠느냐」고 물으시는지라. 종도들이 그래도 따르겠나이다고 맹세하니 또 다시 말씀하시기를「내가 궁벽한 곳에 숨으면 너희들이 반드시 나를 찾겠느냐」고 다구치시니 역시 종도들이 찾겠다고 말하는지라. 상제께서「그리 못하나니라. 내가 너희를 찾을 것이오.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행록 5-24. 상제께서 벽을 향하여 누우시더니 갑자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이제 온 누리가 멸망하게 되었는데 모두 구출하기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하시고 크게 슬퍼하셨도다.

행록 5-35. 상제께서 수박에 소주를 넣어서 우물에 담구었다가 가져오게 하셨도다. 그 수박을 앞에 놓고 가라사대「내가 이 수박을 먹으면 곧 죽으리라. 죽은 후에는 묶지도 말고 널속에 그대로 넣어두는 것이 옳으니라」하셨도다. 상제께서 약방 대청에 앉아 형렬에게 꿀물 한 그릇을 청하여 마시고 형렬에게 기대에 가는 소리로 태을주를 읽고 누우시니라. 이날 몹시 무더워 형렬과 종도들이 모두 뒤 대밭가에 나가 있었도다. 응종이 상제께서 계신 방이 너무 조용하기에 이상한 마음이 들어 방을 들여다보니 상제께서 조용히 누워 계시는데 가까이 가서 자기의 뺨을 상제의 용안에 대어보니 이미 싸늘히 화천(化天)하신지라. 응종이 놀라서 급히 화천하심을 소리치니 나갔던 종도들이 황급히 달려와서 상제의 돌아가심이 어찌 이렇게 허무하리오 하며 탄식하니라. 갑자기 뭉게 구름이 사방을 덮더니 뇌성벽력이 일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화천하신 지붕으로부터 서기가 구천(九天)에 통하는도다. 때는 단기 四천 二백 四십 二년 이조 순종 융희 三년 기유 六월 二十四일 신축 사시이고 서기로는 一九○九년 八월 九일이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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