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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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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명 : 동곡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 마을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전주군 우림면 동곡리

▣ 지명의 유래와 역사

동곡(구릿골)은 상제님께서 공사보실 때에는 전주군 우림면 동곡리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인근의 몇몇 마을과 함께 청도에 편입돼 전주군 우림면 청도리 동곡으로 되었다. 그 후  1935년에 김제군 수류면이 금산면으로 바뀔 때 전주군에서 김제군으로 편입되면서 금산면 청도리 동곡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동곡은 1495년경 안동 김씨 일가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동쪽의 제비산과 서쪽의 구성산 사이에 자리한 이 곳은 마을이 형성될 당시에는 ‘그릇골’ 혹은 ‘도기촌(陶器村)’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이들 명칭은 모두 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던 곳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동곡(銅谷)이라는 한자 지명은 그릇골의 그릇을 한자로 적는 과정에서 그릇을 ‘구릿(구리)’으로 하다가 구리 동(銅) 자를 써 ‘동곡(銅谷)’이라고 한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지리지>「전주부」편에 보면, 「陶器所二. 在府西雨林谷.(전주부 서쪽의 우림곡에 도기를 굽던 장소가 2군데나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우림면은 조선말까지는 우림곡면이라고 했다. 그 지역 가운데 한 곳이 도기촌이라고 부르던 동곡으로 짐작된다.
그릇골, 또는 도기촌이라 부르는 마을이 언제부터 구리(銅)라는 이름을 쓰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선 중엽인 1589년부터 1591년까지 진안 현감으로 있던 민인백(閔仁伯)이 쓴 <토역일기>라는 책에 보면 그가 정여립을 체포한 과정과 반역을 다스린 전말이 나오는데 이 때에 정여립이 낙향해 살던 마을을 ‘동곡’이라고 했다.(정여립은 동곡마을 앞쪽 제비산 중턱에 집을 짓고 살았다.) 여기서 동곡을 ‘동곡(銅谷)’으로 표기했던 점으로 보아서 역사가 오래된 지명이라고 볼 수 있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 상제님 행적

동곡은 상제님 재세시에는 전라북도 전주군 우림면에 속한 지역으로 상제님께서 이곳에 머무시게 된 것은 첫 종도인 김형렬과 관련이 깊다.
상제님께서는 1901년 모악산 대원사에서 49일간의 불음불식 공부를 통해 천지대도를 밝혀주시고, 이듬해인 1902년 4월 원평장터에서 김형렬을 만나신 다음부터는 하운동에 있는 김형렬의 집에 주로 머무시면서 천지공사를 행하셨다. 그리고 1903년 김형렬이 동곡으로 이사를 하게 되자 상제님께서는 이 때부터 화천하신 1909년까지 많은 시간을 동곡에서 보내시게 되었다.
동곡에 머무시는 동안 상제님께서는 많은 이들에게 기행이적과 삼계대권의 권능을 보여주셨으며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제생의 의술을 베푸셨다.
따라서 동곡은 상제님 재세시 많은 공사가 이루어진 공사지(公事地)이며 인간의 몸으로 공사를 마치신 후 화천하신 화천지(化天地)이다.

관련 <전경> 구절

(→ 동곡약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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