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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동

 성지소개  성지갤러리  찾아가는 길

▣ 성지명 : 내주평, 내주동

▣ 위치

 현재 : 김제시 봉남면 내광리 내주 마을
 상제님 재세시 : 금구군 초처면 내주리

▣ 지명의 유래와 역사

<전경>에 ‘내주동(內住洞)’, ‘내주평(內住坪)’으로 기록되어 있는 내주 마을은 마을 옆으로 내광들이라고 부르는 너른 평야를 끼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넓은 논을 소유하여 비교적 부유하게 살었다.
내광들은 내주평(內注坪)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들판의 안쪽으로 내(川)가 흘러 논을 마르지 않게 했다는 것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주 마을은 1789년에 작성된 <호구총수>의 기록에는 내주평(內注坪)으로 되어 있고, 1912년에 작성된 자료에는 내주리(內注里)로 기록되어 있어 마을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옛날에는 마을 근처네 줄(연못이나 냇가에 나는 다년생 풀)이 많아 ‘주두리’라 부르기도 했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 상제님 행적

상제님께서는 1894(갑오)년에 내주동에 살고 있던 처남 정남기의 집에 글방을 차리셨다가 그만 두신 후 1897(정유)년 다시 글방을 차리셨다. 그 후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해인 1909(기유)년 2월 9일 정남기의 집을 다시 찾으시고, “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을 찾아 보리라.”고 하셨다.

관련 <전경> 구절

행록 1-20. 상제께서 갑오(甲午)년에 정 남기(鄭南基)의 집에 글방을 차리고 아우 영학(永學)과 이웃의 서동들을 모아서 글을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심이 비범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높았도다. 글방은 처남의 집이고 금구군 초처면 내주동(金溝郡草處面內住洞)에 있었도다.

행록 2-1. 상제께서 정유(丁酉)년에 다시 정 남기(鄭南基)의 집에 글방을 차리고 아우 영학(永學)과 형렬(亨烈)의 아들 찬문(賛文)과 그 이웃 서동들을 가르치셨도다. 이 때에 유불선 음양참위(儒佛仙陰陽䜟緯)를 통독하시고 이것이 천하를 광구함에 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시고 얼마동안 글방을 계속하시다가 인심과 속정을 살피고자 주유의 길을 떠나셨도다.

행록 5-6. 기유년 二월 九일에 김 자현을 데리고 김제(金堤) 내주평(內住坪) 정 남기의 집에 이르시니라. 그 곳에서 상제 가라사대「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을 찾아 보리라.」상제께서 등불을 밝히시고 새벽까지 여러 집을 다니시고 이튿날 새벽에 수각리(水閣里) 임 상옥(林相玉)의 집에 가시니라. 이 곳에서 글을 쓰고 그 종이를 가늘게 잘라 잇고 집의 뒷담에서 앞 대문까지 펼치니 그 종이 길이와 대문까지의 거리가 꼭 맞는도다. 이 공사를 보시고 상제께서 그 동리에서 사는 김 문거(金文巨)에게 가셨다가 다시 만경(萬頃) 삼거리(三巨里) 주막집에 쉬고 계시는데 한 중이 앞을 지나가는지라. 상제께서 그 중을 불러 돈 세푼을 주시는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자현에게 이르시기를「오늘 오후에 백홍(白虹)이 관일(貫日)하리니 내가 잊을지라도 네가 꼭 살펴 보도록 하라」하시더니 오후에 그렇게 되었도다. 그리고 다음 날에 형렬이 전주로 동행하니라. 이에 앞서 상제께서「오늘 너희가 다투면 내가 죽으리라」이르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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