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홈으로  사이트맵  이메일  English
> 성지 > 성지 검색
 

굴치

 성지소개  성지갤러리  찾아가는 길

▣ 성지명 : 굴치(屈峙)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수청리 굴치 마을 (현재 수청저수지에 수몰)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태인군 남촌일변면 굴치리

▣ 지명의 유래와 역사

굴치는 본래 태인군 남촌일변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읍군 칠보면 수청리에 편입되었다. 굴치라는 이름은 순창군으로 넘어가는 골짜기가 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굴치 마을은 굴치(골짜기) 아래에 있던 마을이다.
굴치 마을은 주위가 고당산(638m), 칠보산(472m), 까치봉(461m), 장태봉(336m)등의 높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었기에 지형적 이점을 활용해 1986년에 수청저수지를 만들면서 굴치 마을은 수몰되었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  상제님 행적

상제님께서 장효순의 화난을 겪으시면서 1904(갑진)년 1월경에 화정리 이경오의 집에 살던 상제님의 가족과 함께 굴치로 가서 머무셨다. 그리고 2월에 들어서 상제님의 아우 영학의 죽음을 예견하시며 시를 전하게 하셨다.

관련 <전경> 구절

행록 3-6. 이로 인하여 상제의 가족은 화를 피하여 태인 굴치로 가고 형렬은 밤중에 피하고 원규는 매일 그들의 행패에 견디다 못 견디어 약국을 폐쇄하고 가족과 함께 익산(益山)으로 피하였도다.

권지 1-28. 상제께서 갑진년 二월에 굴치(屈峙)에 계실 때 영학에게 대학을 읽으라 명하셨으되 이를 듣지 않고 그는 황주 죽루기(黃州竹樓記)와 엄자능 묘기(嚴子陵廟記)를 읽으니라. 상제께서「대(竹)는 죽을 때 바꾸어 가는 말이요. 묘기(廟記)는 제문이므로 멀지 않아 영학은 죽을 것이라」하시며 이 도삼을 불러 시 한귀를 영학에게 전하게 하시니 이것이 곧 골폭 사장 전유초(骨暴沙場纏有草) 혼반 고국 조무인(魂返故國吊無人)이니라.


이전글 구태인 2008-11-14
다음글 금구 2008-11-14
 목록보기  프린트
 
 Top
 영농법인 아그로상생  대순회보  이메일서비스
 산하기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