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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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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명 : 교동(校洞)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 교촌 마을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고부군 벌미면 교동

▣ 지명의 유래와 역사

교동은 본래 고부군 벌미면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정읍군 정토면 회룡리에 편입되었다.  뒤에 정토면은 정우면으로 바뀌었다.
교촌마을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지가 대략 500년전 이라고 한다. 굴메산을 뒤로 하고, 정토칠봉이 앞에 있으며, 현재 회룡초등학교가 이 마을에 있다. 굴메산 모퉁이에 칠성바위가 있어 마을을 수호한다는 전설이 있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상제님 행적

상제님 재세시 고부군 벌미면의 교동마을에는 황응종과 손병욱이 살았다.
교동은 문공신이 살던 와룡리, 신경수가 살던 회룡리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상제님께서 선기옥형의 도수를 보실 때 교동 황응종의 집에서 추도수를 보셨다.(예시 31절)
이외에도 상제님께서는 교동 황응종의 집에서 산하 대운을 거둬들이는 공사(공사 3장 7절)를 보셨고 진시황의 해원도수에 쓰신 책을 황응종의 집 뒤에 묻으셨으며(공사 3장 17절) 구름을 자유자재로 좌우하시는 모습(권지 2장 11절)을 보여주셨다.
또 황응종의 아들이 병으로 위급하게 되었을 때 청수를 떠놓고 상제님께서 계신 곳을 향하여 구하여 주실 것을 발원하였더니 병이 낫게 된 일(권지 2장 12절)도 교동에서 있었던 일이다.
황응종이 살았던 교동과 문공신이 살았던 와룡리, 신경수가 살았던 회룡리(운산마을)가 지금은 모두 회룡리에 속해있기 때문에 <전경>에서도 회룡리와 교동을 혼용해 기록하고 있다.

관련 <전경> 구절

행록 4-20. 그후 어느날 공우가 정읍에 가서 상제를 모시고 와룡리(臥龍里) 네 거리에 이르렀도다. 이 곳에서 북쪽으로 회룡리(回龍里)가 있고 이곳에 신 경수(申京洙)가 살고 서북쪽 교동에 황 응종(黃應鍾)이 살고 있었도다. 상제께서 네거리 복판에서 공우에게「어디로 가는 것이 마땅하냐」고 물으시니 공우가「자기 집으로 가시옵소서」하고 청하니 상제께서 세번이나 되물으시므로 공우도 세번 한결같이 대답하니라. 그러나 상제께서 먼저 응종의 집에 들르셨다가 곧 공우를 데리시고 병욱의 집에 가셨도다. 상제께서 병욱에게 돈 서돈을 청하시기에 그가 올리니 그것을 공우에게 간수하게 하시고 또 두냥을 병욱으로부터 받아서 다시 그에게 그것을 갈무리하게 하신 후에 병욱의 아내를 불러 앞에 앉히고「왜 그리하였느냐」고 세번 되풀이 꾸짖고 외면하시면서「죽음을 다른 사람에게 가라」고 혼자 말씀을 하시니라. 병욱이 상제께 공양할 술을 준비하려 하기에 상제께서「나 먹을 술은 있으니 준비하지 말라」이르시니라. 병욱의 장모가 상제께서 오신 것을 알고 술과 안주를 올리니 상제께서 그 술을 드셨도다.
 응종의 집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새벽에 구릿골로 행차하셨도다. 가시는 도중에 공우에게「사나이가 잘 되려고 하는데 아내가 방해하니 제 연분이 아니라. 신명들이 없애려는 것을 구하여 주었노라. 이제 병은 나았으나 이 뒤로 잉태는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과연 그후부터 그 아내는 잉태하지 못하였도다.

공사 3-7. 상제께서 여름 어느날 황 응종의 집에서 산하의 대운을 거둬들이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상제께서 밤에 이르러 백지로 고깔을 만들어 응종에게 씌우고「자루에 든 벼를 끄집어 내서 사방에 뿌리고 백지 백 이십장과 양지 넉장에 글을 써서 식혜 속에 넣고 인적이 없을 때를 기다려 시궁 흙에 파묻은 후에 고깔을 쓴 그대로 세수하라」고 명하시니 그는 명하신 대로 행하였더니 별안간 인당에 콩알과 같은 사마귀가 생겼도다. 응종이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벼를 뿌린 것을 보았으나 한 알도 보이지 않고 없어졌도다.

공사 3-17. 경석이 상제의 명을 받들어 양지 이십장으로 책 두 권을 매니 상제께서 책장마다 먹물로 손 도장을 찍고 모인 종도들에게 가라사대「이것이 대보책(大寶冊)이며 마패(馬牌)이니라.」또 상제께서 한 권의 책명을「의약복서 종수지문(醫藥卜筮種樹之文)」이라 쓰시고「진시황(秦始皇)의 해원도수이니라」하시고 한 권을 신 원일의 집 뒷산에 묻고 또 한 권을 황 응종의 집 뒤에 묻으셨도다.

권지 2-10. 상제께서 정미년에 와룡리 황 응종의 집에 머물고 계셨도다. 상제께서 응종의 딸에게 앞 마당에 볏짚을 깔고 청수를 올리라 하시니 그 딸이 곧 청수를 동이에 넣어 올렸더니 갑자기 뇌성 벽력이 크게 일어나며 폭우가 억수같이 쏟아졌으나 청수동이를 놓은 다섯자 가량의 둘레에는 한 방울의 빗물도 없었도다.

권지 2-11. 상제께서 와룡리 황 응종의 집에 계실 때 어느날 담뱃대를 들어 태양을 향하여 돌리시면 구름이 해를 가리기도 하고 걷히기도 하여 구름을 자유 자재로 좌우하셨도다.

예시 31. 상제께서 여러 종도들의 집에서 선기 옥형(璿璣玉衡) 도수를 정하시니 신 경수의 집에 저울 갈고리 도수를, 황 응종의 집에 추도수를, 문 공신의 집에 끈도수를, 그리고 신 경수 집에 일월 대어명 도수(日月大御命度數)를 문 공신의 집에 천지 대팔문(天地大八門) 도수를 정하고 이 세 종도의 집에 밤낮으로 번갈아 다니시며 공사를 행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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