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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

 성지소개  성지갤러리  찾아가는 길

▣ 성지명 : 고부(古阜)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고부리 일대(읍치)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고부군 지역

▣ 지명의 유래와 역사

고부의 내력을 보면, 마한(馬韓)시대에 고비리국(古卑離國)으로 추정되는 지역이고, 백제(百濟)때에는 중방고사성(中方古沙城)이 있던 곳으로, 그때는 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으로 그 고을 터가 지금 영원면 은선리(隱仙里)이다.
삼국(三國)이 통일된 신라 경덕왕(景德王)16년에야 고부(古阜)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高麗)시대에는 태조(太祖)19년에 고을을 영주(瀛洲)로 부르고 관찰사(觀察使)를 두었고, 그 고을 터는 지금의 입석리(立石里)였으며, 그 뒤 951년인 광종(光宗)2년에는 안남(安南)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으며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었다. 1019년인 현종(顯宗)10년에 고부군(古阜郡)의 치소(治所)를 지금의 고부리인 성황산(城隍山)으로 옮겼다. 조선(朝鮮)시대에는 1765년인 영조(英祖)41년에 고을 터를, 다시 고부리(古阜里)인 고부초등학교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고부군의 치소는 당시에는 남부면에 자리했는데 지금의 고부면 고부리이다. 이곳에 옛 고부군(古阜郡)의 고을 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고부초등학교가 그 자리에 있다. 고부읍내(古阜邑內)라고도 하는데 예전에는 고부군청(古阜郡廳)이 이곳에 있었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당시의 정읍군에 병합되어 군은 폐합되었다. 폐합 당시 18개 면 가운데 거마면 덕림면 백산면은 부안군으로 편입되고 15개 면은 정읍에 들어갔다.
지금의 정읍시 고부면, 영원면, 이평면, 덕천면 정우면 우순면 등 6개면이 예전의 고부군 관할이었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상제님 행적

고부는 옛 언덕, 첫 발상지의 의미를 갖고 있다.
고부에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 즉 두승산이 있으며 고부의 옛 이름을 영주라고 했다. 이처럼 땅이름에서부터 고부는 원시, 시원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상제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성씨인 강씨성으로 세상에 내려오시게 되셨다.
또 상제님께서는 "고부는 예절을 찾는 구례이다."는 말씀을 통해 고부가 바로 시작을 의미하는 곳으로 원시반본의 때를 맞아 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시게 되는 필연성을 알려주고 있다.

관련 <전경> 구절

행록 1-1. 강(姜)씨는 상고 신농씨(神農氏)로부터 시작되고 성(姓)으로서는 원시성이로다. 우리나라에 건너온 시조(始祖)는 이식(以式)이니 중국 광동 강씨보(中國廣東姜氏譜)에 공좌태조 이정천하후 양제찬위 공이퇴야(公佐太祖以定天下後煬帝纂位公以退野)라고 기록되어 있고 또 우리나라 숙종 을축년보(肅宗乙丑年譜)에「수벌 고구려시 공위병마원수 지살수이 지수장란 잉류불반(隋伐高句麗時公爲兵馬元帥至薩水而知隋將亂仍留不返)」의 기록이 있는 바와 같이 진주 강씨(晋州姜氏)는 중국(中國) 수양제(隋煬帝) 때에 우리 나라에 건너 오니라. 시조(始祖) 이식으로부터 三十一대 자손 세의(世義)가 고부(古阜)로 낙향한 후 六대에 진창(晋昌)・우창(愚昌)・응창(應昌) 삼 형제도 이 곳에 살았도다.

행록 1-6. 그리고 그 탄강하신 마을을 손바래기라고 부르며 당시에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全羅北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라고 부르더니 지금은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井邑郡德川面新月里) 새터로 고쳐 부르도다.

행록 1-24. 고부지방의 유생들이 을미(乙未)년 봄에 세상의 평정을 축하하는 뜻으로 두승산(斗升山)에서 시회(詩會)를 열었을 때 상제께서 이에 참여하시니라. 이때 한 노인이 상제를 조용한 곳으로 청하여 모셔가더니 작은 책 한 권을 전하거늘 그 책을 통독하셨도다.

행록 1-38. 어느 때인지 분명치 않으나 상제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때가 있느니라.「고부에 나보다 항렬이 높은 친족들이 계시는도다. 내가 그들을 대할 때에 반드시 항렬을 좇아 말하게 되느니라. 이것은 윤리상 전통이라.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만 모든 신명은 그들의 불경한 언사를 옳지 않게 여기고 반드시 죄로 인정하느니라. 나는 이것을 어렵게 생각하여 친족과의 왕래를 적게 하느니라」하셨도다.

행록 3-64. 출옥한 종도들은 제각기 집에 돌아갔으나 경석은 고부에 와서 상제의 출옥을 二월 四日 경칩일(驚蟄日)까지 기다려 상제를 맞이하여 객망리 본댁으로 모시고 형렬은 상제께서 출옥하심을 듣고 그제야 안심하고 동곡으로 돌아갔도다.

행록 5-33. 경석으로 하여금 양지에「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 일순 호남 서신 사명(全羅道古阜郡優德面客望里 姜一淳湖南西神司命)」이라 쓰게 하고 그것을 불사르게 하시니라. 이 때에 신 원일이 상제께「천하를 속히 평정하시기 바라나이다」고 아뢰니 상제께서「내가 천하사를 도모하고자 지금 떠나려하노라」하셨도다.

공사 3-3. 상제께서 어느날 공우에게「고부에 가서 돈을 주선하여오라」하시더니 마련된 돈으로써 약방의 수리를 끝마치시고 갑칠로 하여금 활 한 개와 화살 아홉 개를 만들게 하고 그것으로써 공우로 하여금 지천(紙天)을 쏘아 맞추게 하시고 가라사대「이제 구천을 맞췄노라」하시고 또 말씀을 잇기를「고부 돈으로 약방을 수리한 것은 선인포전(仙人布氈)의 기운을 쓴 것이니라」하셨도다.

교법 2-47. 고부(古阜)는 예절을 찾는 구례(求禮)이니라

예시 32. 상제께서 순창 피노리(淳昌避老里)에 계실 떄 황 응종이 배알하니 상제께서 「고부사람이 오니 바둑판을 가히 운전하리라.」 하시고
영웅 소일 대중화(英雄消日大中華)
사해 창생 여낙자(四海蒼生如落子) 란 글을 외워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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