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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

 성지소개  성지갤러리  찾아가는 길

▣ 성지명 : 감천

▣ 위치

현재 :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
도주님 재세시 : 부산시 서구 감천동

▣ 지명의 유래와 역사

도주님께서 창도하신 태극도의 본부는 부산시 사하구 감천2동에 위치해 있다.
감천동은 본래 동래군 사하면의 지역으로서 감내 또는 감천이라 하였는데, 고종 33년(1816) 지방제도 개정에 의하여 부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감천동이라 해서 다시 동래군 사하면에 편입되었는데, 1942년 부산부 구역 확장에 의하여 다시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57년 구제 실시에 의하여 서구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1월 21일 부산시 조례 제156호의 동제 개편에 의하여 감천동을 갈라서 감천1동과 제2동으로 나누었고, 1983년 12월 사하구 승격과 함께 사하구에 속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감천(甘川)은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역사가 오랜 마을이다. 감천(甘川)의 옛 이름은 감내(甘內)이며, 감(甘)은「감」,「검」에서 온 것으로「검」은 신(神)이란 뜻이다.「川」은「내」를 말하며, 그 이전에는「內」를 적어「甘內來里」이며, 감내(甘內) 또는 甘來라고 하였고, 다내리(多內里 : 多大 안쪽 마을)로도 불렀다.
감천에서는 고인돌(支石墓)이 여러 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소도(蘇塗)와 같은 신역(神域 : 聖域)으로 추측된다.
감천동의 주변으로는 천마산(天馬山), 장군산(將軍山), 금티산(金峙山)이 병풍처럼 우뚝 솟아 있고, 두송반도(頭松半島)가 길게 뻗어 내려가서 이루어진 감천만(甘川灣)이 깊숙이 들어가며 감천항을 천연의 항구로 만들었다.

감천의 지정학적 위치는 부산포와 가깝고 다대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예전부터 왜구의 침입으로 몇 번인가 마을이 패촌이 되다시피 했다. 조선 시대에 감천은 천마산성(天馬山城)과 서평포진(西平浦鎭) 사이에 깊이 들어간 감천만에 위치한 요지로 바다에 출입하는 배와 사람들을 검문하는 수문(守門)과 공청(公廳)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한때는 괴정과 함께 목마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군이 주둔하였고, 그 건물은 해방 후 국방경비대(國防警備隊 : 國軍의 前身)에서 쓰다가, 6ㆍ25동란 때에는 영국군 부대가 사용하였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관련 <전경> 구절

교운 2-61. 도주께서 청명한 정유년 가을 어느날에 감천에서 박 한경에게「누구의 소유지냐」고 한곳을 손으로 가리키시면서 물으시기에 그는「자세히 모르겠읍니다」고 아뢰이니라. 그곳이 훗날에 도주의 묘소(墓所)로 정하여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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