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홈으로  사이트맵  이메일  English
> 성지 > 성지 검색
 

전주부

 성지소개  성지갤러리  찾아가는 길

◈ 성지명 : 전주부


▣ 위치

 현재 : 전라북도 전주시 지역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전주군 지역


▣ 지명의 유래와 역사

전주부가 있는 전주성(전주부성)은 조선초기에 도관찰사 최유경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그후 1734(영조 10)년 조현명에 의해 개축된다. 전주성은 오늘날 없어졌으나 그 윤곽은 대체로 현재의 전주우체국을 중심으로 반경 약 500m의 원형에 근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풍남문(豊南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

이 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의 소재지였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의 남쪽 출입문이다. 전주성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출입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 문만 남아 있다.고려시대에 처음 세웠으나, 정유재란 때 화재로 불타버렸고, 영조 44년(1768)에 전라감사 홍락인이 다시 세우면서 풍남문이라 이름하였다. 풍남이란 풍패의 남쪽이라는 뜻이며 풍패는 중국 한나라 고조가 태어난 곳으로 조선왕조의 발원지인 전주를 그 곳에 비유한 것이다. 성문 위에 세운 누각 윗층의 기둥이 아래층의 기둥과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도심에 자리한 단아한 성문에서 옛 전주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관련 <전경> 구절

행록 1-31. 김 형렬은 상제를 모시고 있던 어느날 상제께 진묵(震黙)의 옛 일을 아뢰었도다.「전주부중(全州府中)에 한 가난한 아전이 진묵과 친한 사이로서 하루는 진묵에게 가난을 벗어나는 방법을 물으니 진묵이 사옥소리(司獄小吏)가 되라고 일러주니 아전은 이는 적은 직책이라 얻기가 쉬운 것이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으나 그 후에 아전은 옥리가 되어 당시에 갇힌 관내의 부호들을 극력으로 보살펴주었나이다. 그들은 크게 감동하여 출옥한 후에 옥리에게 물자로써 보답하였다 하나이다. 그리고 진묵은 밤마다 북두칠성을 하나씩 그 빛을 가두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여 칠일만에 모두 숨겨버렸다 하나이다. 태사관(太史官)이 이 변은 하늘이 재앙을 내리심이니 천하에 대사령을 내리시어 옥문을 열고 천의에 순종하사이다하고 조정에 아뢰오니 조정은 그것이 옳음을 알고 대사령을 내렸다 하나이다.」
 이 말을 상제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진실로 그러하였으리라. 내가 이를 본받아 한달 동안 칠성을 숨겨서 세상 사람들의 발견을 시험하리라」하시고 그 날 밤부터 한달 동안 칠성을 다 숨기시니 세상에서 칠성을 발견하는 자가 없었도다.

행록 2-3. 상제께서 이 곳에 며칠 머물고 다시 계속하시여 경기(京畿)ㆍ황해(黃海)ㆍ평안(平安)ㆍ함경(咸鏡)ㆍ경상(慶尙)도의 각지에로 두루 유력하셨느니라. 어느날 상제께서 전주부에 이르시니 부중 사람들이 상제를 신인으로 우러러 모시니라.

행록 3-12. 이 해 五월에 백 남신을 체포하라는 공문이 서울로부터 전주부에 전달되니 남신이 당황하자 김 병욱이 남신에게 작년 겨울에 자기가 화난을 당하였을 때 상제의 도움으로 화난을 면하였음을 알리니 그는 병욱을 통해 상제의 도움을 청하였도다. 상제께서「부자는 돈을 써야하나니 돈 십만냥의 증서를 가져오라」하시니라. 병욱이 곧 남신으로부터 십만냥의 증서를 받아 가지고 이것을 상제께 올렸도다. 그 후에 남신은 화난에서 풀리면서 남(南) 삼도(三道)의 세무관이 되어 몇 만냥의 돈을 모았고 상제께서는 그 후에 증서를 불사르셨도다.

행록 3-13. 상제께서 이해 유월에 김 형렬의 집에 이르시니라. 그는 상제의 말씀을 좇아 전주로 가서 김 병욱을 만나고 상제와 만날 날짜를 정하고 돌아오니라. 그가 돌아오는 길에 장 흥해의 부친 장 효순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니라. 형렬은 모든 것을 상제께 아뢰면서「장 효순은 진작 우리의 손에 죽었어야 마땅하거늘 저절로 죽었으니 어찌 천도가 공정하다 하오리까」고 여쭈니라. 상제께서 들으시고「이 무슨 말이냐 죽은 자는 불쌍하니라」고 꾸짖으셨도다. 그 이튿날 상제께서 병욱과의 약속이 있으심에도 전주부로 가시지 않고 형렬을 이끌고 고부로 향하시는지라. 형렬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상제께서 병욱과의 약속을 어기시는 이유를 여쭈었으나 상제께서 웃으시며 대답을 하시지 않았도다.

행록 3-26. 상제께서 섣달에 원평에 와 계셨을 때에 박 제빈(朴齊斌)이 전라도 전주에 출두하고 군수 권 직상(權稷相)이 파직될 것이란 소문이 떠돌므로 김 병욱도 전주 군장교에 있는 신분으로서 일이 어찌 될까 염려하여 상제를 찾아 뵈옵고 걱정하니 상제께서「근심하지 말라 무사하리라」고 일러 주셨도다. 며칠 후에 박 어사가 전주부에 들어섰으나 그의 면관비훈이 전주부에 내려오므로 상제의 말씀대로 일은 무사하였도다.

교운 1-11. 이 치안(李治安)이 상제의 예지에 감탄하여 상제를 좇게 되었도다.
 전주부중에 들어가시다가 어떤 사람이 황급하게 가는 것을 보고 그에게 「집으로 곧 돌아가라」고 이르시니라. 그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묻는도다. 상제께서 「그대가 지금 혼사로 중매인을 찾아가나 그가 그대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느니라. 그리고 오늘 중매인을 만나서 결정하지 않으면 그 일은 허사가 되리라」 하시니라. 그 사람이 매우 경탄하여 일러주신 대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니 과연 중매인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도다. 그후 그 사람은 감복하여 상제를 찾아 뵈이니 이 사람이 바로 이 치안이니라.

교운 1-15. 이해 七월에 동학당원들이 원평에 모였도다. 김 형렬이 상제를 뵈옵고자 이곳을 지나다가 동학당이 모여있는 것을 보고 상제를 찾아 뵈옵고 그 사실을 아뢰이니 상제께서 그 모임의 취지와 행동을 알아오도록 그를 원평으로 보내시니라. 그는 원평에서 그것이 일진회의 모임이고 보국  안민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대회 장소가 충남(忠南) 강경(江景)임을 탐지하고 상제께 되돌아가서 사실을 아뢰었도다. 이 사실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그네들로 하여금 앞으로 갑오(甲午)와 같은 약탈의 민폐를 없애고 저희들 각자가 자기의 재산을 쓰게 하리라. 내가 먼저 모범을 지어야 하리라」 말씀하시고 본댁의 살림살이와 약간의 전답을 팔아 그 돈으로 전주부중에 가셔서 지나가는 걸인에게 나누어 주시니라. 이로부터 일진회원들은 약탈하지 않고 자기 재산으로 행동하니라. 이 일로써 전주 부민들은 상제께서 하시는 일을 감복하면서 공경심을 높였도다.

권지 1-17. 백 남신의 친족인 백 용안(白龍安)이 관부로부터 술도매의 경영권을 얻으므로써 전주 부중에 있는 수백개의 작은 주막이 폐지하게 되니라. 이 때 상제께서 용두치 김 주보의 주막에서 그의 처가 가슴을 치면서 「다른 벌이는 없고 겨우 술장사하여 여러 식구가 살아왔는데 이제 이것마저 폐지되니 우리 식구들은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통곡하는 울분의 소리를 듣고 가엾게 여겨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어찌 남장군만 있으랴. 여장군도 있도다」 하시고 종이에 여장군(女將軍)이라 써서 불사르시니 그 아내가 갑자기 기운을 얻고 밖으로 뛰어나가 소리를 지르는도다. 순식간에 주모들이 모여 백 용안의 집을 급습하니 형세가 험악하게 되니라. 이에 당황한 나머지 그는 주모들 앞에서 사과하고 도매 주점을 폐지할 것을 약속하니 주모들이 흩어졌도다. 용안은 곧 주점을 그만 두었도다.

제생 6. 장 효순은 지병인 횟배앓이로 생명을 잃게 된 시집간 딸 때문에 전주부에 머물고 계시는 상제를 찾아와서 고쳐주시기를 간청하였느니라. 상제께서 그집에 이르러 그 두 부부를 불러 벽을 사이에 두고 등지고 서게 하여 부인 병이 남편에 옮아가게 하신 후에 상제께서 남편의 배를 만져 회복하게 하시니라.

제생 19. 전주부 사람 문 태윤이 상제를 배알하니라. 상제께서 「그가 갖고 있는 보따리를 끌러 보이라」 이르시니 그 자가 주춤하자 「소란때문에 수상한 자를 근방에서는 재우지 않느니라」고 말씀을 이으시니 그제서야 그 자가 풀어보이는도다. 그것은 그 자와 숙질간의 금전 소송 서류였도다. 태윤은 상제께 이러한 불만스러운 일이 있으므로 선생님께 그 해결 방법을 얻고자 방문한 까닭을 아뢰이니라. 상제께서 글을 써서 봉하여 주시며 이것을 조카집 문 앞에서 불사르라고 방법을 가르쳐주셨도다. 태윤이 명을 좇으니라. 그후에 듣자니 숙질간의 불화가 가셨다 하니라.


이전글 서천교 2011-05-23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
 목록보기  프린트
 
 Top
 영농법인 아그로상생  대순회보  이메일서비스
 산하기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