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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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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명 : 전룡리

* 관련지명 : 이치안, 이직부의 집

▣ 위치

 현재 :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 전룡 마을
 상제님 재세시 : 전주군 이동면 전룡리


▣ 지명의 유래와 역사

용모양을 하고 있는 작은 산이 있었는데, 이 산에 밭이 많아 전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신흥도심지역으로 부각되고 있다.


▣ 관련 <전경> 구절

행록 3-2. 흥해의 부친은 본래 성질이 사나와서 부중 사람들로부터 천둥의 별명을 가졌느니라. 그는 손자의 죽음에 분통이 나서 상제를 원망하니라.「이것은 고의로 손자를 죽인 것이 분명하니라.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며 아무리 위독한 병이라도 말 한 마디로 고치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도다. 내 손자를 고의로 죽이지 않았다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 지라도 그 신통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으리라.」그는 분노에 못 이겨 몽둥이를 들고 와서 상제를 난타하니 상제께서 유혈이 낭자하니라. 그제서야 상제께서 무엇인가를 깨달으시고 일어나시려고 하시니라. 이때 그는 살인범이라고 소리치며 상제를 결박하여 장방(長房)으로 끌고 가다가 갑자기 결박을 풀면서「이것이 다 나의 잘못이니다. 어린애가 급병으로 죽은 것을 어찌 선생님을 원망하리오.」뉘우치 듯이 말하고 옛 정으로 돌아가시기를 원하며 자기 집으로 동행하시자고 권하는지라. 상제께서 들으시지 않고 서 원규(徐元奎)의 집에 가셔서 그 날 밤을 지내시고 이튿날에 전주(全州) 이동면(伊東面) 이 직부의 집으로 가셨도다.

교운 1-11. 이 치안(李治安)이 상제의 예지에 감탄하여 상제를 좇게 되었도다. 전주부중에 들어가시다가 어떤 사람이 황급하게 가는 것을 보고 그에게 「집으로 곧 돌아가라」고 이르시니라. 그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묻는도다. 상제께서 「그대가 지금 혼사로 중매인을 찾아가나 그가 그대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느니라. 그리고 오늘 중매인을 만나서 결정하지 않으면 그 일은 허사가 되리라」 하시니라. 그 사람이 매우 경탄하여 일러주신 대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니 과연 중매인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도다. 그후 그 사람은 감복하여 상제를 찾아 뵈이니 이 사람이 바로 이 치안이니라.

제생 42. 상제께서 이 직부의 집에 가 계셨을 때에 그가 굳이 자기 부친의 당년의 신수를 논평하시기를 청하므로 상제께서 부득히 백지 한 장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고 다시 다른 종이에 글을 써서 「급한 일이 있거든 뜯어보아라」고 이르시고 봉하여 주셨도다. 그의 부친은 그것을 깊이 간수하였다가 얼마 후에 그의 자부가 난산으로 위경에 빠져 있음을 듣고 그 봉서를 가지고 갔더니 벌써 순산하였으므로 그는 그 봉서를 다시 잘 간수하였도다. 연말에 치안이 병들어 매우 위독하게 되자 아들 직부가 그 봉서를 열어보니 「소시호탕(小柴胡湯) 두 첩이라」 쓰여 있었도다. 그 약으로 치안은 바로 쾌유하였도다.

제생 43. 상제께서 전주 이 치안의 집에 고견 원려 왈지(高見遠慮曰智)의 글을 써놓으셨도다.

권지 1-14. 그후에 상제께서 김제 반월리(金堤半月里) 김 준희(金駿熙)의 집에 계셨을 때 전주 이동면 전룡리(全州伊東面田龍里)에 사는 이 직부의 부친이 상제를 초빙하는도다. 상제께서 그 집에 옮겨 가셨는데 그집 훈장이 상제의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는 것을 미리 아셨도다. 상제께서 줏대를 갖고 산을 두시며 그 동네 호구와 남녀 인구의 수를 똑바로 맞추시고 「사흘 안에 한 사람이 줄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니라. 그와 직부가 이상히 여겨 동네 호구를 조사하니 一호 一구의 차이도 없었고 사흘 안에 한 사람이 죽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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