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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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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명 : 좁은목


▣ 위치

현재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좁은목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전주군 부남면 지역


▣ 지명의 유래와 역사

상관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길목은 산길을 넘어오는 노루목재와 산 아래로 돌아오는 좁은목(좁을목)이 있다. 좁은목은 드나드는 길목이 좁다는 뜻이다. 임실군 관촌에서 완주군 상관을 거쳐 흘러온 전주천이 이곳 좁은목에서부터 전주로 흘러들게 된다. 전주천을 따라 형성된 길도 이곳 좁은목에서는 남고산 자락과 중바위 자락이 서로 지척에 마주 서 있기 때문에 전주 쪽에서건 상관 쪽에서건 이곳은 좁은 길목이다. 두 산이 마주 서 가로막고 있고 그 사이로 전주천이 흐르고 있는 까닭에 이곳은 예전부터 바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매우 시원했으며, 겨울에는 또 몹시 추웠다고 한다.
현재는 한벽루 앞의 전주천 위로 한벽교를 신설하여 전주 남원간 도로가 주요 교통로가 되었지만 한벽교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좁은목은 남원, 임실, 상관 쪽에서 전주로 들어오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다.


▣ 관련 <전경> 구절

교운 1-12. 김 병욱은 계묘(癸卯)년 四월부터 남원(南原)의 세금을 거두는 관직에 있게 되었도다. 이 때에 박 영효(朴泳孝)가 일본(日本)에 망명하여 혁명을 도모하고 병욱이 또 그에 연루하였도다. 관은 그 당원을 체포하기로 정하고 八월에 포교가 서울로부터 남원으로 내려와서 병욱을 찾았도다. 전주 군수 권 직상이 병욱의 거처를 알기 위해 포교를 전주에서 남원으로 보냈도다. 그 전날 미리 상제께서 남원에 가셔서 병욱을 숙소의 문 바깥에 불러내시고 그로 하여금 수합한 세금을 숙소 주인에게 보관시키고 가죽신 대신에 짚신을 신게 하고 밭둑과 언덕을 걸으시니 병욱은 묵묵히 뒤만 따랐도다. 한 주막에서 점심을 끝내시고 다시 걸어가시다가 그의 선산밑에 이르니 때는 이미 저물었도다. 그제서야 상제께서 그를 돌아보시고 묘소를 물으시니 바로 이 곳이라고 그가 아뢰니 상제께서 또 묘형을 물으시니 「와우형(臥牛形)입니다」고 여쭈는지라. 말씀하시되 「그러면 소 우는 소리를 들어야 참이 되리라」 하시고 그 자리에 앉아 기다리시니 산 아래서 소 우는 소리가 나는도다. 병욱이 소의 울음소리를 아뢰이니 상제께서 「먼데서 들리면 소용이 없나니라」 하시고 한참 있으니 이상하게도 한 사람이 소를 몰고 묘 앞으로 지나가는데 소가 크게 우는도다. 상제께서 가라사대 「혈음(穴蔭)이 이미 동하였도다」 하시고 자리를 떠서 그 산소의 재실로 내려가 이 곳에서 그날 밤을 새우시니라. 이튿날 상제께서 묘지기를 남원에 보내여 형세를 알아보게 하셨도다. 그는 남원에 갔다 와서 서울 포교가 병욱을 수색함을 아뢰이니 이때 비로소 병욱이 깨닫고 크게 두려워하여 몸 둘 곳을 모르도다. 상제께서 다시 묘지기에게 여자가 타는 가마를 마련케 하고 병욱을 거기에 태우고 전주 상관(上關) 좁은 목에 이르러 병욱으로 하여금 먼저 서 원규의 집에 가서 정세를 자세히 살피게 하시니라. 그는 먼저 원규의 집에 들어서니 원규가 몹시 놀라면서 「그대가 어떻게 사지를 벗어났으며 또 어떻게 하려고 이런 위지에 들어섰느냐. 너무나 급한 화이기에 미처 연락할 새가 없었노라. 여러 친구와 그대의 가족들이 근심 걱정 하는 중이니라」고 말하는도다.
 병욱은 포교들이 전주를 떠나 남원으로 향하고 상제와 자기가 남원을 벗어나온 때가 겨우 한나절 사이 밖에 되지 않는 것을 원규로 부터 듣고 상제께서 천신이심에 탄복하여 마지 아니하는도다. 포교는 남원에 이르러 병욱을 수색하다가 찾지 못하고 전주에 되돌아와서 군수 권 직상을 조르고 각처에 게시하거나 훈령을 내려 병욱을 잡아들이게 하는 중이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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