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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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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명 : 용암리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쌍룡리 용암 마을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금구군 수류면 용암리

▣ 지명의 유래와 역사

마을 뒷산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을 내에 김사유의 물방앗집(수침막)이 있어서 상제님께서 며칠을 머무르셨던 적이 있다. 현재 물방앗집은 금평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없어졌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 관련 <전경> 구절


행록 3-37. 정읍(井邑) 사람 차 경석(車京石)이 정미년 오월에 처음으로 상제를 배알하였느니라. 이 때 상제께서는 용암리(龍岩里) 수침막(水砧幕)에 머물고 계셨도다. 그는 원래 동학 신도였으나 일진회 전주 총대를 지낸 사람이라. 그는 전주 재무관과의 소송관계로 정읍에서 전주로 가던 길에 점심을 먹으려고 용암리 주막에 들렀는데 이 때 상제께서도 김 자현(金自賢)과 몇 종도를 데리고 이 주막에 들르셨도다. 경석은 상제의 의표와 언어 동작을 살피고 그 비범하심을 알고 예를 갖추어 말씀을 청하는지라. 상제께서 그를 태연히 대하시니 그는 여쭈어 말하기를「무슨 업을 행하시나이까.」상제께서 웃으시면서「의술을 행하노라」고 말씀을 건너시고 술을 마셨도다. 그러시다가 상제께서 계탕 한 그릇을 그에게 권하시니 그가 받은 뒤에 그릇에 벌 한 마리가 빠져 죽거늘 경석이 수저를 멈추고 혹 상서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망서리고 있는 것을 상제께서 보시고「벌은 규모있는 벌레니라」고 말씀하시니 그가 속으로 감복하는도다. 그는 상제께 서류를 꺼내어 보이면서 그 곡절을 여쭙고「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이 송사를 처결한다 하온데 선생님께서 판단하여주소서.」하고 상제를 시험코자 답을 청하는지라.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일의 곡직은 여하간에 원래 대인의 일이 아니라. 남자가 마땅히 활인지기를 찾을 지언정 어찌 살기를 띄리요」하시니 경석은 더욱 위대하심에 경복하여 곧 소송 서류를 불사르고 사사하기를 청하면서 머물고 계시는 곳을 묻는도다. 이에 상제께서「나는 동역객 서역객 천지 무가객(東亦客西亦客天地無家客)이다」고 하시니라. 경석은 머물고 계시는 곳을 모르고 헤어지면 다시 배알할 기회가 없을 것을 짐작하고 날이 저물어 상제와 그 일행이 떠나는 것을 기다려 그 뒤를 좇으니라. 닿은 곳이 용암리(龍岩里) 물방앗집이니라. 경석은 그 식사와 범절이 너무 조촐하여 한시도 견디기 어려워 하였도다.

행록 3-38. 경석이 그 물방앗집에서 열흘 동안 묵으면서 상제께 정읍으로 가시기를 간청하였으되 상제께서 응하지 아니하시고 때로는 노하시고 때로는 능욕하시기도 하고 구축도 하여 보셨느니라. 그래도 경석은 끝끝내 떠나지 아니하므로 상제께서「그럼 네가 나를 꼭 따르려거든 모든 일을 전폐하고 내가 하라는 일에만 전력하여야 할지니 너의 집에 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유월 초하루에 다시 이곳으로 오라. 그러면 함께 가리라」고 이르시니 그는 곧 돌아가서 가사를 대략 정리하고 그 날짜에 용암리에 다시 와서 상제께 배알하고 정읍으로 가시기를 또 청하는도다. 상제께서 불응하시다가 사흘 후에 허락하여 말씀하시기를「내가 목이 잠기는 깊은 물에 빠져서 허위적거리다 헤엄쳐서 겨우 발목이 닿는 물에 이르렀는데 이제 다시 깊은 물로 끌어들이려 하는도다」고 하셨도다.

공사 1-8. 상제께서 임인년 가을 어느날에 김 형렬에게⌈풀을 한 곳에 쌓고 쇠꼬리 한개를 금구군 용암리(金溝郡龍岩里)에서 구하여 오게 하고 또 술을 사오고 그 쌓아놓은 풀에 불을 지피고 거기에 쇠꼬리를 두어 번 둘러내라」고 이르시고 다시 형렬에게⌈태양을 보라」고 말씀하시니라. 형렬이 햇무리가 나타났음을 아뢰이니라. 그말을 상제께서 들으시고⌈이제 천하의 형세가 마치 종기를 앓음과 같으므로 내가 그 종기를 파하였노라 하시고 형렬과 술을 드시었도다.

제생 24. 정 태문(鄭泰文)이 정미년에 용암리에 살고 있는 김 사유(金士有)의 물방앗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태문이 상제와 함께 여러날 한 방에서 지낼 영광스러운 기회를 가졌도다. 그 시절에 태문이 토질로 신고하여 고쳐주시기를 청하니 상제께서 허락만 하시고 고쳐주시지 아니 하시더니 어느날 태문에게 「네가 병을 고치려하느뇨」 물으시기에 태문이 소원임을 아뢰니 상제께서 「내가 이틀 후에 정읍으로 가리니 이제 고쳐주리라」 말씀하시고 글을 써 주시면서 「이 글을 네 침실의 베개 위에 두고 자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라. 그러면 개가 방문을 향하여 두 앞발을 모으고 혈담을 토하리라. 곧 네 병을 개에게 옮겼느니라」 이르셨도다. 태문은 이르신대로 결과가 나타난 것에 새삼 경탄하니라. 태문이 상제를 술집에 모시고 술을 올리니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술을 마시고 술값을 바로 갚지 않으면 먹지 아니함만 못하니라.」 태문이 「내일 틀림없이 갚으려 하나이다」고 여쭈니라. 술값은 일곱냥이었도다. 이튿날 상제께서 정읍으로 떠나신 뒤에 태문이 술값을 천천히 치르려고 생각하더니 별안간 복통을 일으키는지라. 그제서야 마음을 돌리고 꼭 갚으리라 결심하니라. 복통도 가라앉아 술값을 바로 갚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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