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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리

 성지소개  성지갤러리  찾아가는 길

▣ 성지명 : 와룡리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 괴동마을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고부군 벌미면 와룡리

▣ 지명의 유래와 역사

와룡리는 상제님 재세시에는 고부군 벌미면에 속한 마을이었지만,지금은 지명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정읍에서 701번 지방도로를 따라 신태인읍 방면으로 가다보면 읍사무소 못 미친 곳에서 우측으로 샛길이 나온다. 비교적 포장이 잘 되어 있는 도로를 따라 마을들이 연이어 나오고, 계속 가다보면 회룡초등학교가 나온다. 이곳 주변이 황응종과 손병욱이 살았던 교동(교촌마을)이고, 옆 마을이 괴동마을이다.1914년에 와룡리는 신기리와 함께 인근 괴동리에 병합돼 마을이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이 지역은 현재 정읍시 정우면에 속해있다.
상제님께서 고부 와룡리(실제로는 회룡리와 교동을 포함)에 머무시며 공사를 행하신 시기는 대체로 1907(정미)년부터라고 추정한다. 이 해 가을경에 일진회원이었던 문공신, 신경수, 황응종 등이 상제님을 추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교운 1장 21절) 문공신은 상제님께서 1907년 가을 순창 농암의 박장근의 집에서 공사를 행하실 때 처음 만나셔서 참관케 하셨다.(행록 3장 65절) 또 황응종은 예전부터 상제님 부친과 친분이 있었지만 이때부터 종도로써 따르게 된 것이다.

<전경>에 나오는 와룡리는 실상 와룡리와 그 주변 마을을 포함한 지명이다. 문공신이 살았던 와룡리, 신경수가 살았던 회룡리, 황응종과 손병욱이 살았던 교동마을이 모두 현재의 회룡리로 통합되었는데 <전경>에서는 와룡리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경>에서 와룡리는 회룡리, 교동 등과 함께 찾아야 하고, 문공신, 신경수, 황응종, 손병욱 등의 종도들에 대한 기록들도 함께 찾아야 이해가 쉽다.
일례로, <행록> 3장 56절을 보면 『정우면 와룡리에서 포박되어』라는 구절이 있다. 정우면은 1935년 이후에 생겨난 행정구역명이며, 와룡리는 상제님 재세시의 지명이지만 1914년 이후에는 사라진 지명이다. 따라서 「정우면 와룡리」는 「벌미면 와룡리」로 봐야 한다. 또 상제님께서 포박되신 장소는 와룡리가 아니라 회룡리 신경수의 집이기 때문에 「벌미면 회룡리」로 이해해야 한다.
상제님께서 와룡리 문공신의 집에서 행하신 주요 공사를 살펴보면, 만국 창생들의 새 상활법으로써 물화상통 공사(공사 2장 23절)를 보셨으며, 앞으로 천지 개벽시대에 전쟁이 일어나면 재주가 월등한 나라가 상등국이 되도록 공사를 보시면서 문공신의 집 벽에 정의도라는 이름의 그림을 그려 붙이셨다.(공사 2장 25, 26절)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 관련 <전경> 구절

행록 3-51. 상제께서 이해 섣달에 고부 와룡리에 계시면서 문 공신과 신 경수의 두 집에 왕래하셨도다. 하순에 형렬이 상제를 배알하니 상제께서 입고 계시던 의복을 내어 주시면서 집에 돌아가 빨아서 자현과 함께 다시 오라고 이르셨도다. 그는 말씀대로 행하여 상제를 배알하고 의복을 올렸도다.

행록 3-55. 이십 오일 밤중에 무장한 순검 수십명이 갑자기 공신의 집을 포위하고 좌중에 있던 사람을 결박하고 상제의 거처를 묻기에 신 경수의 집에 계시는 것을 말하니 순검들이 곧 달려갔도다. 그들은 방문에 총대로 구멍을 뚫고 위협하느니라. 상제께서 방안에서 총대를 잡으시고 호령하시니 저희들이 겁을 먹고 총대를 빼려고 잡아당겨도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하였도다. 잠시 있다가 상제께서 들어오라고 허락하시니 비로소 저희들이 방에 들어오더니 상제를 비롯하여 종도 이십여명을 포박하였도다. 이튿날 상제와 종도들은 고부 경무청에 압송되었나니 이것은 의병의 혐의를 받은 것이로되 백의장군 공사에 따른 화난이라고 훗날에 상제께서 말씀하셨도다.

행록 3-56. 상제와 종도들은 정우면 와룡리(淨雨面臥龍里)에서 포박되어 상제를 선두로 하여 덕천면 용두 마을에 이르렀을 때 상제께서 돝 한 마리를 잡게 하고 종도들이나 순검들과 함께 잡수시고 고부로 행하셨도다.

행록 3-65. 화난이 있은 후 어느날 상제께서 문 공신의 집에 가시니 공신이 불쾌한 어조로 불평을 털어놓으니라.「일전에 고부 음식점의 주인이 나에게 와서 외상으로 달린 주식대를 갚으라는 독촉을 하였는데 생각컨대 고부 화액때 가지고 갔던 백목과 돈을 흩어 버리지 않으시고 그 음식값을 갚지 아니하셨나이까.」상제께서 묵묵히 들으시고 가라사대「네 말을 들으니 그러하리로다. 순창 농암에 사흘동안 계속 머물면서 너를 만나 여러가지 큰 공사를 참관케 하였고 또한 고부 도수에 감당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네게 주인을 정하여 독조사 도수를 붙였노라. 진주 노름에 독조사라는 것이 있으니 남의 돈을 따 보지도 못하고 제 돈만 잃고 바닥이 난 후에야 개평을 뜯어가지고 새벽녘에 본전을 회복하는 수가 있음을 말함이니라. 고부에서 음식 값을 말한 일이 있었으나 그 돈을 쓰면 독조사가 아니니라. 그때 네가 꼭 돈이 있어야 되겠다고 했으면 달리 주선이라도 하여 주었으리라」하시니 공신이 잠잠히 듣고만 있다가 여쭈기를「일이 그와 같을 진대 그만 두사이다」하니라. 상제께서는 동곡으로 돌아 가셨도다.

공사 2-23. 상제께서 만국 창생들의 새 생활법으로써 물화상통을 펼치셨도다. 종도들이 상제의 명을 좇아 공신의 집에서 밤중에 서로 번갈아 그 집의 물독 물을 반 바가지씩 퍼내 우물에 쏟아 붓고 다시 우물 물을 반 바가지씩 독에 붓고 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여러 우물과 독의 물을 번갈아 바꾸어 갈아 부었도다.

공사 2-25. 공신의 집에서 또 어느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이 뒤에 전쟁이 있겠느냐 없겠느냐」고 물으시니 혹자는 있으리라고도 하고 혹자는 없으리라고도 아뢰니라. 상제께서 가라사대「천지 개벽시대에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라고 하시고 전쟁 기구를 챙겨 보신다면서 방에 있는 담뱃대 이십여개를 거두어 모아 거꾸로 세우고 종도들로 하여금 각기 수건으로 다리와 머리를 동여매게 하시고 또 백지에 시천주를 써서 심을 부벼 불을 붙여 들게 하고 문창에 구멍을 뚫어 놓은 다음에 모두 담뱃대를 거꾸로 메게 하고「행오를 잃으면 군사가 상하리라」이르고 종도들로 하여금 뒷문으로 나가서 부엌으로 돌아와서 창 구멍에 담뱃대를 대고 입으로 총소리를 내게 하고 다시 변소로 돌아와서 창구멍에 담뱃대를 대고 다시 총소리를 내게 하고 또 헛청으로 돌아들어 그와 같이 하되 궁을(弓乙)형을 지어 빨리 달리게 하니 늙은 사람이 씨근덕 거리더라. 다시 상제께서 이르시기를「이 말세를 당하여 어찌 전쟁이 없으리오. 뒷날 대전쟁이 일어나면 각기 재조를 자랑하리니 재조가 월등한 나라가 상등국이 되리라.」이 공사가 끝나자 천고성이 사방에서 일어났도다.

공사 2-26. 그리고 그림을 그려 문 공신의 집 벽에 붙이고 이를 정의도(情誼圖)라고 이름하셨도다.

공사 3-22 상제께서 어느날 고부 와룡리에 이르사 종도들에게「이제 혼란한 세상을 바르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와야 한다.」고 말씀 하셨도다.「황극신은 청국 광서제(淸國光緖帝)에게 응기하여 있다. 하시며「황극신이 이땅으로 옮겨 오게 될 인연은 송 우암(宋尤庵)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시작되었느니라.」하시고 밤마다 시천주(侍天呪)를 종도들에게 염송케 하사 친히 음조를 부르시며「이 소리가 운상(運喪)하는 소리와 같도다.」하시고「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군왕의 길이로다. 이제 황극신이 옮겨져 왔느니라」고 하셨도다. 이때에 광서제가 붕어하였도다.

권지 2-29. 김 경학이 무신년 五월에 고부 와룡리 문 공신의 집에 가서 상제를 뵈오니 상제로부터 「내일 일찍 태인 살포정에서 만나자」고 분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조반 후에 살포정에 이르니 그 주막에서 행객 두 사람이 싸우고 있고 상제께서는 큰 길가의 높은 언덕에 돌아앉아 계시기에 올라가 인사를 드리니 인사만 받으시고 여전히 돌아앉으신 채 언짢게 계시는도다. 그는 까닭을 모르고 송구한 마음으로 모시고 서있노라니 잠시 후에 상제께서 싸우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만 두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싸움을 그치고 제 길을 가는지라. 그때에야 경학이 「어떤 사람들이 싸웠나이까」고 여쭈어 보았더니 상제께서 「우리 겨레에서 정 감(鄭堪)을 없앴는 데도 세상에서 정 감의 노래가 사라지지 아니하기에 혹시 이(李)씨가 정(鄭)씨의 화를 받을까 염려스러워 이제 그 살을 풀고자 이씨의 기운을 돋우고 정씨의 기운을 꺾는 공사를 보았노라」 일러주시니라.

제생 36. 상제께서 어느때 공신의 집에 계신 일이 있었도다. 그 때에 공신의 모친이 요통으로 고생하고 있음을 상제께서 들으시고 매실 한냥 중을 종이에 싸서 들보에 매어달고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곧 제생되었도다.

예시 31. 상제께서 여러 종도들의 집에서 선기 옥형(璿璣玉衡) 도수를 정하시니 신 경수의 집에 저울 갈고리 도수를, 황 응종의 집에 추도수를, 문 공신의 집에 끈도수를, 그리고 신 경수 집에 일월 대어명 도수(日月大御命度數)를 문 공신의 집에 천지 대팔문(天地大八門) 도수를 정하고 이 세 종도의 집에 밤낮으로 번갈아 다니시며 공사를 행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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