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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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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명 : 살포정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장학리 장재마을 북서쪽 구역(현재 마을은 없어짐)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고부군 장순면 사포리

▣ 지명의 유래와 역사

살포정은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고부군 장순면 사포정(沙浦里)이라고 되어 있다.
사포리가 살포정으로 부르는 이유는 정확하지 않은데, 사포리에서 인근 송내리(솔안 ; 현재 정읍시 정우면 장순리 송내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을 살포리고개로 부르고 있기에 예전부터 사포리를 살포리 또는 살포정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정(亭)은 동(洞)이나 리(里)와 같은 뜻으로 마을을 나타내는 단위로 사용되고 있다.
상제님 재세시에 살포정(사포리)는 태인을 가로지르는 동진강의 지류가 마을 앞까지 흘러들어왔기 때문에 나루(浦)가 있었다고 한다. 사포리라는 이름 역시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물길이 좁아져 농수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살포정 마을은 뚫리면서 사라졌다. 현재 우산교차로와 주유소 인근 자리가 모두 옛 살포정 마을터이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 관련 <전경> 구절

행록 4-22. 훗날에 윤경이 상제를 찾아 뵈옵고 고부인(高夫人)과 희남(熙南)의 병세를 알리니라. 소식을 듣고 상제께서「내일 살포정에 가서 나를 기다리라」고 이르셨도다. 윤경은 이튿날 살포정으로 갔으나 상제를 뵈옵지 못하여 바로 태인 소퇴원 주막으로 가니라. 주막 주인이 윤경의 물음에「선생님께서 윤경을 새울로 보내라」고 전하니 그는 새울로 떠나가니라.
그는 도중에서 일병 수백명을 만나 검문을 받았으나 가환으로 의사를 모시러 가는 길이라고 알리니 저희들이 모두 물러가는도다. 윤경이 새울에 가서 상제께 배알하니 상제께서「오늘은 병세가 어떠냐」고 물으시니라. 윤경이「집에서 일찌기 떠났음으로 잘 모르나이다」고 아뢰인즉 상제께서「네가 무엇하러 왔느냐」고 꾸짖으시니 윤경은 몸 둘 바를 모르더라. 이날 밤에 상제께서 윤경으로 하여금 밤이 새도록 문밖을 돌게 하셨도다. 윤경이 졸음을 달래면서 돌고 있는 중에 첫 닭이 울더니 상제께서 문밖으로 나오셔서「네가 졸리지 않느냐」고 물으시기에 윤경이「졸리지 아니하나이다.」고 여쭈니「그럼 나와 함께 백암리(白岩里)로 가자」하시고 길을 떠나시니라. 김 자현도 따라 백암리 김 경학의 집에 이르러 조반을 먹고 다시 정읍으로 갔도다. 상제께서 일행을 앞세우기도 하고 뒤에 따르게도 하시면서 얼마동안 가시다가「일본 사람을 보는 것이 좋지 않다」하시고 정읍 노송정(老松亭)에 이르셨을 때「좀 지체하였다가 가는 것이 가하다」하시고 반시간쯤 쉬시니라. 일행은 노송정의 모퉁이에 있는 큰 못가에 이르렀을 때 일본 기병이 이곳으로 오다가 이곳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돌아간 많은 말 발자국을 보았도다. 이때 상제께서「대인의 앞 길에 저희들이 어찌 감히 몰려오리오」라고 외치셨도다. 옆에 있던 윤경이 행인으로부터 수십명의 일본 기병이 이곳에 달려왔다가 딴 곳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라. 상제께서 대흥리에 이르셔서 고부인과 희남의 병을 돌보시니라. 그들은 병에서 건강한 몸을 되찾았도다.

공사 3-20. 또 하루는 상제께서 공우에게「태인 살포정 뒤에 호승예불(胡僧禮佛)을 써주리니 역군(役軍)을 먹일만한 술을 많이 빚어 넣으라」이르시니라. 공우가 이르신대로 하니라. 그후에 상제께서「장사를 지내주리라」고 말씀하시고 종도들과 함께 술을 잡수시고 글을 써서 불사르셨도다. 상제께서「지금은 천지에 수기가 돌지 아니하여 묘를 써도 발음이 되지 않으리라. 이후에 수기가 돌 때에 땅기운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교운 1-25. 상제께서 정미년 가을 어느날 신 원일과 박 공우와 그외 몇 사람들을 데리고 태인 살포정 주막에 오셔서 쉬시는데 갑자기 우뢰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 집에 범하려 하기에 상제께서 번개와 우뢰가 일어나는 쪽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곧 멈추는지라. 이 때 공우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번개를 부르시며 또 때로는 꾸짖어 물리치기도 하시니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하시는 상제시라. 어떤 일이 있어도 이분을 좇을 것이라고 마음에 굳게 다짐하였더니 어느날 공우에게 말씀하시기를 「만날 사람 만났으니」라는 가사를 아느냐 하시고 「이제부터 네가 때마다 하는 그 식고(食告)를 나에게 돌리라」 하시니 공우가 감탄하여 여쭈기를 「평생의 소원이라. 깨달았나이다.」 원래 공우는 동학신도들의 식고와는 달리 「하느님 뵈어지소서」라는 발원의 식고를 하였는데 이제 하시는 말씀이 남의 심경을 통찰하심이며 조화를 임의로 행하심을 볼 때 하느님의 강림이시라고 상제를 지성으로 받들기를 결심하였도다.

권지 2-29. 김 경학이 무신년 五월에 고부 와룡리 문 공신의 집에 가서 상제를 뵈오니 상제로부터 「내일 일찍 태인 살포정에서 만나자」고 분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조반 후에 살포정에 이르니 그 주막에서 행객 두 사람이 싸우고 있고 상제께서는 큰 길가의 높은 언덕에 돌아앉아 계시기에 올라가 인사를 드리니 인사만 받으시고 여전히 돌아앉으신 채 언짢게 계시는도다. 그는 까닭을 모르고 송구한 마음으로 모시고 서있노라니 잠시 후에 상제께서 싸우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만 두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이 싸움을 그치고 제 길을 가는지라. 그때에야 경학이 「어떤 사람들이 싸웠나이까」고 여쭈어 보았더니 상제께서 「우리 겨레에서 정 감(鄭堪)을 없앴는 데도 세상에서 정 감의 노래가 사라지지 아니하기에 혹시 이(李)씨가 정(鄭)씨의 화를 받을까 염려스러워 이제 그 살을 풀고자 이씨의 기운을 돋우고 정씨의 기운을 꺾는 공사를 보았노라」 일러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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