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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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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명 : 백암리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 원백암 마을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태인군 남촌일변면 백암리

▣ 지명의 유래와 역사

백암리는 <호구총수)(1789)에는 태인군 남촌면 백암리로 되어 있고,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는 태인군 남촌일변면 백암리로 되어 있다.
본래 태인군 남촌일변면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주변 마을을 병합해 백암리로 합쳐 부르고 정읍군 칠보면에 편입됐다. 예전 백암리는 원백암 마을로 부르고 있다.
백암리(원백암마을)는 마을 뒷산에 흰 바위가 곳곳에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또 마을 주변 24방위에 24개의 당산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몇 개의 당산이 마을 주변에 남아 있다.
300여년전 조선시대 모은 박잉걸이 백암리에 살면서 인근 굴치로 가는 길을 닦고 태인에 대각교를 놓았으며 흥삼마을에는 길가에 큰 막을 쳐 놓고 의복과 신발을 걸어놓아 가난한 이웃들이 사용하게 했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 관련 <전경> 구절


행록 4-47. 이후에 백암리에서 상제를 박 공우와 신 원일이 모시고 있었도다. 이 때 종도 김 경학의 천거로 김 영학(金永學)이 상제를 배알하였을 뿐 상제께서 이렛동안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도다. 영학이 매우 불만을 품기에 공우와 원일이 그에게「그대가 상제께 삼가 사사하기를 청하면 빨리 가르쳐 주시리라」고 일러주니 그 때야 그는 사사하기를 청하니 상제로부터 승락을 얻었느니라. 그런데 상제꼐서 갑자기 그를 꾸중하시는도다. 영학은 두렵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문밖으로 나가니라. 상제께서 영학을 불러들여「너를 꾸짖는 것은 네 몸에 있는 두 척신을 물리쳐 내려하는 것이니 과히 불만을 사지 말라」고 타이르셨도다. 영학이「무슨 척이니까. 깨닫지 못하겠나이다」고 되물은 즉「너는 열 여덟살 때 살인하고 금년에 또 살인하였나니 잘 생각하여 보라」고 회상을 촉구하시니 그는 옛일을 더듬었도다.「그 나이때에 제가 남원(南原)에서 전주 아전과 말다툼하다가 그의 무례한 말에 분격하여 그에게 화로를 던져 머리에 상처를 입혔는데 이것으로써 신음하다가 그 이듬해 삼월에 죽었도다. 또 금년 봄에 장성(長城) 다동(多洞)에서 사는 외숙인 김 요선(金堯善)이 의병으로부터 약탈을 당하여 의병대장 김 영백(金永白)을 장성 백양사(長城白羊寺)로 찾아가서 그 비행을 꾸짖으니 그 대장은 외숙에게 사과하고 그 의병을 찾아 총살하였도다.」영학이 이 두 일을 아뢰었도다.

행록 5-9. 경석이 삼월 어느날에 공우와 윤경을 백암리 김 경학의 집에 보내어 상제께 일이 무사함을 아뢰게 하였도다. 그 말을 들으시고 상제께서 가라사대「내가 공사를 본 후에 경석을 시험하였으되 일을 무사히 처결하였으니 진실로 다행한 일이로다」고 하셨도다.

공사 3-1. 상제께서 무신년 봄 백암리 김 경학ㆍ최 창조의 두 집으로 왕래하시며 성복제와 매화(埋火) 공사를 보셨도다. 김 광찬의 양모의 성복제가 최 창조의 집에서 거행되었느니라. 창조는 상제의 지시에 좇아 돼지 한 마리를 잡고 그 고기에 계란을 입혀 전을 만들고 대그릇에 담아서 정결한 곳에 두고 또 상제의 분부에 따라 상제의 의복 한 벌을 지어 두었도다. 저육전이 다 썩었으므로 창조가 동곡으로 사람을 보내서 상제께 아뢰이니 상제께서 그 사람을 좀 기다리게 하시고 형렬에게 이르시니라.「네가 태인에 가서 최 내경ㆍ신 경원을 데리고 창조의 집에 가라. 오늘 밤에 인적이 없을 때를 기다려 정문 밖에 한 사람이 엎드릴 만한 구덩이를 파고 나의 옷을 세 사람이 한 가지씩 입고  그 구덩이 앞에 청수 한 그릇과 화로를 놓고 작은 사기 그릇에 호주를 넣고 문어 전복 두부를 각각 그릇에 담아 그 앞에 놓아라. 그리고 한 사람은 저육전 한 점씩을 집어서 청수와 화로 위로 넘기고 한 사람은 연달아 넘긴 것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다시 받아서 구덩이 속에 넣고 흙으로 덮어라. 그리고 빨리 돌아오너라」고 일러주시니 형렬이 그대로 시행케 한 후 시급히 상제께 돌아가는 길에 돌연히 검은 구름이 일더니 집에 이르자 폭우가 쏟아지고 뇌전이 크게 치는지라. 상제께서 형렬에게「이 때 쯤 일을 행할 때가 되었겠느냐」고 물으시니 그는「행할 그 시간이 되었겠나이다」고 여쭈었도다. 상제께서 가라사대「뒷날 변산 같은 큰 불덩이로 이 세계가 타버릴까 하여 그 불을 묻었노라」하셨도다.

공사 3-32. 하루는 상제께서 경학의 집에서 사지를 오려내는 듯이 백지(白紙)를 두 기장으로 오려 벽에 붙이고 물을 뿜으시니 빗방울이 떨어지는지라. 그리고 청수 한 동이를 길어오게 하고 그 동이 물 한 그릇을 마시다가 남은 물을 다시 동이에 붓고 모인 여러 종도들에게 그 동이 물을 한 그릇씩 마시게 하셨도다.

교운 1-32. 상제께서 김 경학의 집에 대학교를 정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였으니 천한 사람에게 먼저 교를 전하리라)』 하시고 경학을 시켜 무당 여섯명을 불러오게 하고 그들의 관건을 벗기고 그들의 각자 앞에 청수를 떠놓고 그것을 향하여 사배를 하게 하고 시천주 세번을 제각기 따라 읽게 하셨도다. 이것을 끝내고 그들의 이름을 물은 다음에 각자로 하여금 청수를 마시게 하니 이것이 곧 복록이로다. 이것이 해원시대에 접어들어 맨 먼저 천한 사람들에게 교를 전하신 것이었도다.

권지 1-20. 상제께서 어느날 공우를 데리시고 태인 새울에서 백암리로 가시는 도중에 문득 관운장(關雲長)의 형모로 변하여 돌아보시며 가라사대 『내 얼굴이 관운장과 같으냐)』 하시니 공우가 놀라며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거늘 상제께서 세 번을 거듭 물으시니 공우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관운장과 흡사하나이다)』고 아뢰니 곧 본 얼굴로 회복하시고 김 경학의 집에 이르러 공사를 행하셨도다.

권지 2-15. 상제께서 五월에 태인 백암리로 가실 때 김 경학의 집에서 불이 나서 바람을 타기 시작하여 화재가 위험하게 되니라. 상제께서 『이 불을 끄지 않으면 동리가 위태로우리라』고 말씀하시고 크게 바람을 일으켜 불을 끄시니라. 경학은 바람으로써 불을 끄는 법도 있다면서 탄복하였도다.

예시 46. 상제께서 하루는 『천지 대팔문(天地大八門) 일월 대어명(日月大御命) 금수 대도술(禽獸大道術) 인간 대적선(人間大積善) 시호 시호 귀신세계(時乎時乎鬼神世界)』라 써서 신 경수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공우(公又)를 주어 경수의 집벽에 붙이게 하시고 가라사대 『경수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정하노니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그 장점만 취하고 혹 단점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지 말라』 하셨도다. 이때에 또 형렬(亨烈)에게 가라사대 『법(法)이란 것은 서울로부터 비롯하여 만방(萬方)에 펼쳐나가는 것이므로 서울 경자(京字) 이름 가진 사람의 기운을 써야 할지로다. 그러므로 경수(京洙)의 집에 수명소(壽命所)를, 경학(京學)의 집에 대학교를, 경원(京元)의 집에 복록소(福祿所)를 각각 정하노라』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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