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홈으로  사이트맵  이메일  English
> 성지 > 성지 검색
 

하운동

 성지소개  성지갤러리  찾아가는 길

▣ 성지명 : 하운동(夏雲洞)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정읍시 금산면 청도리 하운동(하운) 마을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전주군 우림면 하운동

▣ 지명의 유래와 역사

호남고속국도의 금산사 인터체인지에서 금산사 방향으로 712번 지방도로를 타고 들어가면 금평저수지를 지나 동곡마을 입구가 나온다. 동곡은 상제님께서 약방을 설치해 많은 공사를 보신 후 화천하신 곳이다. 마을 입구로부터 계속해서 이어진 길을 따라가다가 용화동 삼거리에서 왼쪽 길의 전주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된다. 712번 지방도로는 전주까지 이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서 하운교를 지나면 나오는 첫 번째 마을은 오동정이다. 상제님 재세시 이곳엔 커다란 오동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신약전서를 불태우는 공사를 보신 곳이기도 하다. 오동정을 지나 조금만 가면 바로 하운동 마을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찾기 쉽다. 멈추지 않고 길 따라 계속 가면 청도원이 나오고 그 고개 너머가 전주이다.
하운동은 100여 년 전 까지는 행정구역상 전주군 우림면에 속해있었다. 1914년에 청도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이 통합돼 전주군 우림면 청도리로 되었다가 1935년에 이 지역이 김제군으로 바뀌면서 김제군 수류면에 속하게 되었다. 수류면은 다시 금산면으로 바뀌고 김제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지금은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하운마을로 불린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물이 마을회관인데 동리 주민들이 항상 모여 있어서 말 묻기가 좋다. 그들로부터 전해들은 마을의 역사는 근 천년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확인할 문헌이나 자료는 없다. 아무튼 아래쪽의 태인, 원평 등지에서 전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운동 앞으로 난 길을 따라 가야만 했기에 길만큼 오래된 마을인 것은 분명하다.

하운동 동북쪽의 산은 깃대봉으로 모악산 자락과 연이어 있다. 남쪽에는 탁주봉이 있고 북쪽으로는  모기봉이 있다. 서쪽은 제비봉과 닿아있어 사방이 산에 둘러 쌓인 곳이다.
하운(夏雲)이라는 마을이름도 높은 산자락 아래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바람이 잘 통하지 않아 여름처럼 무더울 뿐만 아니라 안개 같은 구름이 골짜기에서 일어나 마을을 감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운동을 비롯해 인근 동곡마을이나 그 일대는 안동 김씨가 오랫동안 살던 곳이라 김씨 문중의 땅이 많다. 특히 마을 외곽의 동남쪽 산골짜기는 제비창골이라고 부르는데 안동 김씨 문중의 재실(齋室)이 있으며 일년 내내 안개가 많이 끼고 습한 곳이다. 김형렬은 이곳 제비창골 안동 김씨 재실에 딸린 집에서 살았다. 《전경》에는 『하운동은 원래 산중이라 길이 매우 좁고 험하고 수목이 우거져 길에 얽혀 있느니라.』(권지 1장 9절)고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상제님께서 하운동에 계시다가 외부로 출타하실 때면 먼저 글을 써서 신명에게 치도령(治道令)을 내리셨다. 치도령을 내리시면 여름에는 나무에 내린 이슬을 바람이 불어 떨어뜨리고 겨울에는 진흙 길이 얼어붙기도 하고 쌓인 눈이 녹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김형렬은 본래 환평리에 살았는데 그의 집은 인근에서도 알아주는 부자였다. 그러나 그가 손댄 사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가세가 기울자 하운동의 문중 재실로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상제님 행적

상제님께서 하운동 김형렬의 집을 찾으신 날은 1902년 4월 13일이다. 월초에 원평장터에서 우연히 상제님을 뵌 김형렬은 조만간 찾아가리라는 말씀을 듣는다. 그로부터 얼마 후 상제님께서 찾아오셨는데 이 날은 마침 김형렬의 부인이 아들을 낳느라 고생하던 참이었다. 상제님께서 그에게「이후부터 나를 믿고 근심을 놓으라」하시니 곧바로 부인의 고통이 멈추었다.(제생 5절) 이후 상제님께서는 4월 15일부터 9월 19일까지 김형렬에게 심법을 전수하시고 수련을 계속하게 하셨다.
하운동에 머무시며 천지공사를 보시던 중에 상제님께서는 김형렬에게『선천에서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이 원한이 쌓이고 맺혀 삼계를 채웠으니 천지가 상도(常道)를 잃고 갖가지의 재화가 일어나고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무릇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신도로부터 원을 풀어야 하느니라. 먼저 도수를 굳건히 하여 조화하면 그것이 기틀이 되어 인사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니라. 이것이 곧 삼계공사(三界公事)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주 삼계를 주재하시는 분으로서 곧 상제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며 선천을 뜯어고쳐 후천 선경을 열기위해 상제님께서 직접 인간 세상에 내려오셨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 상제님께서는 하운동과 전주 사이를 다니시면서 약재를 쓰지 않고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건져주시니 많은 사람들이 상제님께 경복하며 종도가 되고자 하였다. 그 가운데 전주군 화전면 화정리에 살고 있던 이경오의 병을 고쳐주신 것은 상제님께서 처음으로 의법을 베푸신 일로 기록되어 있는데 『내가 이 병으로 표준을 삼고 천하의 병을 다스리는 시험을 하리라』(제생 2절)고 하셨다.

한편, 1902년 8월 추석날에는 형렬이 집안이 가난한데도 상제님께 공양하기 위해 쇠솥을 팔려고 하자 이를 보시고 상제님께서 『솥이 들썩이니 미륵불(彌勒佛)이 출세하리라』고 하신 일이 있다. 지난 1999년 8월 추석날 종단에서는 중곡도장과 포천도장, 제주도장의 영대 원위에 도전님의 진영을 모셨으니 비로소 원위가 금산사 삼존 미륵과 같은 뫼 산자를 나타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상제님께서 공사보신 『미륵불이 출세하리라』는 말씀대로 도수가 이루어졌을 뜻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관련 <전경> 구절

행록 1-29. 상제의 신성하심이 하운동(夏雲洞)에도 알려졌도다. 이 곳에 이 선경(李善慶)이란 자의 빙모가 살고 있었도다. 상제께서 주인을 찾고「그대의 아내가 四十九일동안 정성을 드릴 수 있느냐를 잘 상의하라」분부하시니라. 주인은 명을 받은 대로 아내와 상의하니 아내도 일찍부터 상제의 신성하심을 들은 바가 있어 굳게 결심하고 허락하니라. 상제께서 다시 주인에게 어김없는 다짐을 받게 하신 뒤에 공사를 보셨도다. 그 여인은 날마다 머리를 빗고 목욕재계한 뒤에 떡 한 시루씩 쪄서 공사 일에 준비하니라. 이렇게 여러날을 거듭하니 아내가 심히 괴로와하여 불평을 품었도다. 이날 한 짐 나무를 다 때어도 떡이 익지 않아 아내가 매우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노라니 상제께서 주인을 불러「그대 아내는 성심이 풀려서 떡이 익지 않아 매우 걱정하고 있으니 내 앞에 와서 사과하게 하라. 나는 용서 하고자 하나 신명들이 듣지 아니하는도다」고 見=척灸? 주인이 아내에게 이 분부를 전하니 아내가 깜짝 놀라면서 사랑방에 나와 상제께 사과하고 부엌에 들어가서 시루를 열어보니 떡이 잘 익어 있었도다. 부인은 이로부터 한결같이 정성을 드려 四十九일을 마치니 상제께서 친히 부엌에 들어가셔서 그 정성을 치하하시므로 부인은 정성의 부족을 송구히 여기니 상제께서 부인을 위로하고 그대의 성심이 신명에게 사무쳤으니 오색 채운이 달을 끼고있는 그 증거를 보라고 하셨도다.

교운 1-3. 김 형렬은 임인년이 되어 상제께서 본댁에 머무실 때마다 상제를 찾아 뵈옵곤 하였고 상제께서 본댁에서 하운동(夏雲洞)으로 자주 내왕하셨기에 그 중로에 있는 소퇴원 마을 사람들은 상제와 형렬을 잘 알게 되었도다.

권지 1-9. 상제께서 언제나 출타하시려면 먼저 글을 써서 신명에게 치도령(治道令)을 내리시니라. 상제께서 계셨던 하운동은 원래 산중이라 길이 매우 좁고 험하고 수목이 우거져 길에 얽혀 있느니라. 치도령을 내리시면 여름에는 나무에 내린 이슬을 바람이 불어 떨어뜨리고 겨울에는 진흙 길이 얼어붙기도 하고 쌓인 눈이 녹기도 하였도다.

제생 4. 임인년에 상제께서 전주와 하운동(夏雲洞) 사이를 다니시면서 약재를 쓰지 않고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을 건져주시니 모든 사람들은 그 신력에 경복하였도다.


이전글 하마가 2008-11-14
다음글 학동 2008-11-14
 목록보기  프린트
 
 Top
 영농법인 아그로상생  대순회보  이메일서비스
 산하기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