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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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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명 : 통사동, 통사동 재실

▣ 위치

 현재 : 정읍시 감곡면 통석리 통사마을(통사동)
 상제님 재세시 : 태인군 은동면(은기동면) 지역
 도주님 재세시 : 정읍군 감곡면 통석리 통사마을(통사동)

▣ 지명의 유래와 역사

통석리(通石里)는 본래 태인군 감산면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오리, 육리, 칠리, 반곡리, 과신리, 팔리, 대구리, 소구리, 반룡리 각 일부와 태인군 은동면(은기동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해 정읍군 감곡면에 편입했다. 마을 이름은 이 지역 기존의 마을 이름인 통사(通司)와 석정(石亭)의 약칭을 따서 통석리라 하였다.
따라서 통사동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는 태인군 은동면에 속해 있던 곳이다. 도주님께서 머무시던 당시에는 정읍군 감곡면 통석리 통사마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통사동 재실’이라고 부른다.
통사마을은 전의 이씨 문중 사람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으로 마을 뒷산에 자리한 통사동 재실은 전의 이씨 문중의 재실이며 영모재라고도 불렀다.
통사마을은 국도 1호선이 지나는 곳에 위치해 천아산(天娥山) 봉우리를 기점으로 형성하여, 예전에는 통제사(統制使)가 나온 마을이라 하여 통사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산중이어서 천아산 솥튼재(소퇴원 ; 통사동에서 옹동면 용호리로 가는 고개)를 넘어 한양으로 가는 통로였다.

통사동 재실은 언제 지어졌는가
통사동 재실 대들보의 상량문을 보면, 崇禎紀元後五丙子三月十三日立柱同月十六日戊申申時上樑(숭정기원후오병자삼월십삼일입주동월십육일무신신시상량) : 숭정황제의 즉위후 다섯 번 째 병자년 3월 13일에 기둥을 세우고, 같은 달 16일 무신일 신시에 상량하다)라고 적혀있다.
숭정황제는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며, 1628(무진)년에 즉위하며 연호를 숭정이라고 했다. 숭정연간의 병자년은 1636년에 해당하며 숭정황제 즉위후 다섯 번 째 병자년은 1876년이 된다. 따라서 통사동 재실은 1876년 3월 16일(음력)에 상량을 했다는 것이다.
그 후 도주님께서는 1918년부터 1927년까지 통사동 재실에서 머무시며 많은 공사를 행하신 기록이 <전경>에 있다.
통사동 재실은 1876년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미 오래 세월이 흘러서 낡고 허물어져 가는 중이라 도주님께서 1927(정묘)년에 통사동 재실의 중수를 명하신 기록이 <태극진경>에 나온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 도주님 행적

1918(무오)년 10월경에 도주님께서 안면도에서 황새마을(현 감곡면 계룡리 관봉마을)로 오심. 이후 도주님께서는 몇 개월 동안을 대원사에 머무르셨다.(교운 2장 11절 참조)
도주님께서는 1919년 1월 15일에 정읍 마동 김기부의 집에 살고 있던 상제님의 누이동생 선돌부인으로부터 봉서를 받으시고 보름동안 머무르셨다가 황새마을로 돌아오셨다.(교운 2장 13절 참조) 이후 9월에 보천교에서 둔궤를 찾아 통사동 재실에 보관하셨으니, 도주님께서는 1909년 2월부터 9월 사이에 통사동 이준세의 재실에 공부처를 마련하셨음을 알 수 있다.
 1919(기미)년 9월 4일 보천교에 보관중이던 둔궤를 찾아오심.(교운 2장 14, 16, 17절 참조)
   재실에 계시면서 종도들에게 해원상생 대도의 진리를 설법.
 1920(경신)년 2월 17일 둔궤가 저절로 열려 둔궤의 내용을 확인.(교운 2장 20절)
 1921(신유)년 9월 5일 구릿골(김제 동곡)에서 통사동 재실로 상제님의 성골을 모시고 돌아옴.
      (교운 2장 22절)
 1922(임술)년 12월 그믐 문공신 등이 재실에 난입해 상제님의 성골을 훔쳐감.(교운 2장 24절)
 1927(정묘)년 9월부터 여러 달 동안 통사동 재실에서 주를 놓는 공부를 보셨다.(교운 2장 40절)

관련 <전경> 구절

교운 2-14. 선돌부인이 하루는「구릿골 약방에 비치하셨던 둔궤가 천지도수의 조화둔궤라 하루 바삐 그것을 찾도록함이 어떠하겠나이까」라고 도주께 아뢰니라. 이때 도주께서는 도수에 따라 이 준세(李俊世)의 재실에서 도수를 보고 계셨도다. 이곳은 황새마을에 가까운 통사동(通士洞)이니라.

교운 2-16. 도주께서 기미년 九월에 들어서서 정읍 대흥리 차 경석(井邑大興里車京石)의 보천교 본부에 둔(遁)궤를 가져다 둔것을 확인하시고 그것을 재실로 옮기고자 하셨도다.

교운 2-18. 도주께서 통사동(通士洞) 재실에서 어느날「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吾道者今不聞古不聞之道也)라 믿고 닦기가 어려우니라」하시고 다시 추종하는 여러 사람들을 앞에 모으고 무극대운(无極大運)의 해원 상생 대도(解冤相生大道)의 진리를 설법하시여 도(道)를 밝혀주셨도다.

교운 2-20. 도주께서 경신년에 재실에서 밤낮으로 불면 불식하면서 공부하시던 중 이월 열 이레에 둔궤가 봉안된 곳에서 벼락소리가 나더니 둔궤가 저절로 열려져 있었도다. 그 속에 호피 한장과 반쯤 핀 국화 한 송이가 그려있고 양피(羊血) 스물넉점이 궤에 찍혀있고 오강록(烏江錄) 팔문둔갑 설문(舌門)이란 글자가 궤에 쓰여 있었도다. 그후 둔궤는 도주께서 함안 반구정(伴鷗亭)에서 공부하실 때 그곳에 옮겨졌도다. 그러나 당시 심복자이던 창원 사람 조 주일(曺周一)이 둔궤를 훔쳐 갔는데 훗날에 종도들이 이를 알고 매우 안타까와하니 도주께서「그 시기의 도수에 쓰였으면 족하니라. 둔궤의 둔자는 도망 둔자이도다」고 그들에게 이르셨도다.

교운 2-22. 신유년 九월 五일에 권 태로와 그외 네 사람이 도주의 분부를 받고 구릿골에서 통사동 재실로 상제의 성골을 모시고 돌아오니라. 이때 갑자기 뇌성이 일고 번개가 번쩍였도다.

교운 2-23. 성골이 옮겨진 후 십 오일이 되니 상제께서 구세 제민 하시고자 강세하신 날이 되니라. 이날 재실에 모여 치성을 올린 후에 도주께서「시시묵송 공산리 야야한청 잠실중 분명조화 성공일 요순우왕 일체동(時時黙誦空山裡 夜夜閑聽潛室中 分明造化成功日 堯舜禹王一切同)이라」말씀하셨도다. 그러나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느니라. 그들 속에 권 태로・이 상우・이 우형이 끼어있었도다. 이들은 재실에서 매일 밤낮으로 치성을 올리고 공부하시는 도주의 시종을 들었도다.

교운 2-24. 도주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니라. 이 좇는 무리들에게 도주께서 말씀하시길「임술년 섣달에 이르면 납월도수에 북현무도수(北玄武度數)가 닥쳐서 금전이 아니면 일이 풀리지 않을 것이라」하시고 소액의 금품을 남겨 놓으셨도다. 좇던 무리 중 한 사람이 문 공신(文公信)과 합세하여 야밤에 재실에 침입하여 난동을 부린 끝에 상제의 성골과 약간의 금품을 훔쳐가니 섣달 그믐 새벽 두시었도다.

교운 2-40. 도주께서 태인에 계시다가 정묘년 九월부터 배 문걸을 데리?통사동의 재실에 가셔서 주(籌)를 놓는 공부를 석 달동안 보시고 그후에도 계속하셨도다. 주의판을 오동목으로, 숫가지를 대나무 조각으로 하셨도다. 숫가지 놓는 소리가 그치지 아니하고 숫가지가 이리저리로 옮겨질 때마다 불빛이 번쩍이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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