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홈으로  사이트맵  이메일  English
> 성지 > 성지 검색
 

청도원

 성지소개  성지갤러리  찾아가는 길

▣ 성지명 : 청도원(淸道院)

▣ 위치

 현재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청도원 마을
 상제님 재세시 : 전라북도 전주군 우림면 청도리(청도원리)

▣ 지명의 유래와 역사

청도리(淸道里)는 본래 전주군 우림면 지역으로 ‘청도원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정리(팥정이)와 동곡리(구릿골), 금구군 수류면의 용정리 일부를 합하여 ‘청도리’라는 이름으로 전주군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에 김제군 수류면(현 김제시 금산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청도리에는 동곡, 백운, 하운, 청도, 오동정, 유각 등의 마을이 속해 있다.
원(院)이란 관원(官員)이 유숙하던 여관을 이르는 말로 조선시대 원이 있었던 곳에 마을이 생겨나 마을 이름을 청도원리라고 불렀던 듯하다.
청도마을은 금산사에서 모악산 서쪽 고개를 통하여 전주로 넘어가는 길옆의 비교적 높고 편편한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상제님께서 다니셨을 그 당시에 아래쪽 금구 지역이나 태인 등지에서 전주 혹은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 가야 했던 길목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분지와 같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북쪽으로는 모기봉(402m)이 서쪽으로는 구성산이 남쪽으로는 깃대봉이 바라다 보인다.
이 곳 청도마을에서 상제님께서는 종도 류찬명의 집에서 청국공사를 보셨으며, 또 다른 종도 김송환의 집도 여기에 있다.

▣ 성적(聖蹟)-성지 관련 행적

 관련 <전경> 구절

행록 5장 20절. 상제께서 六월 열흘께는 심기가 불편하셔서 동곡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청도원 김 송환의 집에 들러서 유숙하시니라. 마침 신 경원이 상제를 배알하기에 상제께서 그에게「네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하시고 양지 한 장을 주어 유(儒)・불(佛)・선(仙) 석 자를 쓰게 하시니라. 상제께서 유자 곁에 이구(尼丘) 불자곁에 서역(西域) 선자 곁에 고현(古縣)이라 쓰시고 그 양지를 불사르셨도다. 상제께서 동곡 약방에 가셔서 모든 종도들에게 六月 二十일에 모이라고 통지하셨도다.

공사 2장 6절. 상제께서「청주(淸州) 만동묘(萬東廟)에 가서 청국 공사를 행하려 하나 길이 멀고 왕래하기 어렵고 불편하므로 청도원(淸道院)에서 공사를 행하리라」하시고 청도원 류 찬명의 집에 이르러 천지 대신문을 열고 공사를 행하셨도다. 그 때에 김 송환이 그 시종을 들었느니라.

제생 3절. 상제께서 전주 능소(陵所)에 가 계실 때 황 응종(黃應鍾)이 본댁으로부터 와서 상제의 부친의 병보를 아뢰이므로 상제께서 응종에게 술과 돈 열 냥을 주시며「해가 저물었으나 불쾌히 생각지 말고 곧 돌아가다가 청도원(淸道院) 김 송환(金松煥)의 집에서 자고 내일 이른 아침에 동곡 김 갑칠에게 가서 나의 모시 두루마기 한 벌을 가지고 가서 부친에게 입혀드리고 이 돈으로 영양분 있는 음식을 만들어 공양하라」고 이르셨도다. 응종이 날은 저물었으나 감히 명을 거역치 못하고 능소를 떠나 행길에 나온 지 한 시간도 못 되어 길옆에 돌비석이 보이는지라. 청도원에 이른 것이니라. 능소로부터 六十리나 되는 청도원을 한 시간도 못 되게 당도한 것에 놀라고 이것은 반드시 상제의 도력임을 깨닫고 기뻐하였도다. 김 송환의 집에서 자고 이튿날 이른 아침 동곡에 들러 두루마기를 찾아 가지고 객망리에 가서 상제의 부친에게 입혀드리니 부친이 곧 정신을 회복하고 영양분 있는 음식 대접을 받으니 몸도 완쾌하였도다.


이전글 천원 2008-11-14
다음글 초강 2008-11-14
 목록보기  프린트
 
 Top
 영농법인 아그로상생  대순회보  이메일서비스
 산하기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