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홈으로  사이트맵  이메일  English
> 경전 > 주제별경전연구
 

 전체  칼럼  인물  지명  고사  인용  역사사건

등록일 2010-11-26 조회수 2997
제 목 [지명] 수리산 수리사

 

수리산은 경기도 안양과 군포, 의왕과 안산 및 시흥시를 잇는 경기 남부지역의 준봉 중 하나이다. 해발 475m로 그리 높지 않지만 봉우리가 매우 빼어나고 골짜기가 깊어 옛부터 풍류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수리산의 유래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수리산은 본래 견불산(見佛山)으로 불리웠다. 신라의 왕손이었던 운산대사가 이곳 수리산에서 뼈를 깎는 기도정진 끝에 부처님을 친견하고 성불의 수기를 받았다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혹자는 절 북쪽 산자락에 부처님 형상의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불리운다고도 한다. 수리산이라는 이름은 수리사가 있다 해서 약 60년 전부터 불리워져 왔다.

 

이곳 수리사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1968년 도전님께서 이곳 수리사에서 공부를 하셨다는 점이다.

 

공부장소는 대웅전 오른쪽 위편에 있는 산신각과 절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암자였으며 청운스님이 정성껏 받들었다.

 

행정구역상 군포시 속달동 329번지에 속한 수리사(修理寺)는 신라 진흥왕대(540~576)에 창건됐으나 자세한 창건 경위는 알 수 없고 그저 불심(佛心)을 닦는 성지라 하여 수리사라 이름하였다. 석가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등(燈)은 능히 색(色)을 나타낼지언정 보는 것은 눈이요 등이 아니며, 눈은 능히 색을 나타낼지언정, 보는 성품은 마음이요 눈이 아니라』고 하였다. 동(動)하지 않고 멸하지 않으며 잃어버리거나 혼란하지도 않는 본심을 찾는 것이 바로 부처를 볼 수 있고 각을 얻는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견불산이나 수리산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연고는 진성(眞性)을 깨달으라는 것이리라. 불가의 진리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했다. 견(見)하는 성(性)이다. 견(見)의 성(性)은 나이니 자성(自性)에 눈뜨라는 진리가 불법이라 하겠다.

 

도전님께서는「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고 하셨다. 이 말씀도 결국 마음의 무욕청정(無慾淸淨)함이 자성과 진성을 회복하는 지름길이며 도통진경에 이르는 길임을 밝히는 것이다. 한때는 대웅전 등 36동의 전각과 12개의 산내 암자를 거느린 대찰의 위용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임진왜란 중에 거의 파괴되고 말았다. 수리사가 다시 가람의 선풍을 날린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이다. 근대 불교의 중흥자인 경허선사가 2백여 명의 대중과 함께 선풍을 드날리더니, 그 법맥이 이어져 금오선사라는 걸출한 선사를 배출한 도량이 되었다.

 

6·25동란의 전화는 또다시 수리사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지금의 대웅전과 요사, 그리고 부모은중경이 새겨진 삼층석탑은 1961년 이후 복원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각지붕을 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산신각, 칠성각, 종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앞마당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는데 탑신에는 검은 대리석에 부모은중경을 새겨 놓았다.

 

가람의 위세와 관계없이 수리사는 주변의 산세가 수려하고 기기절묘 하여 기도객과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주지 성견스님과 신도들이 간절한 복원불사 서원과 기도에 따라 98년 초에는 신도의 현몽으로 절 앞산에 묻혀 있던 돌부처님을 찾아 대웅전 옆에 봉안할 수 있었다. 현몽의 주인공은 신도 회장 송만용 거사의 부인인 지혜성 보살.

 

세 번의 현몽을 통해 각기 흩어져 있던 석불과 좌대를 찾을 수 있었고 부처님을 봉안할 거북바위까지 현몽을 통해 계시 받을 수 있었다. 수리사가 천년 고찰임을 알게 하는 또 하나의 성보(聖寶)는 청동제(靑銅製) 직인(職印). 다른 사찰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유물로 수리사의 사격(寺格)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전글 방곡리 2010-11-25
다음글 마하사(摩訶寺) 2010-11-26
 프린트   목록보기
 
 Top
 영농법인 아그로상생  대순회보  이메일서비스
 산하기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