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홈으로  사이트맵  이메일  English
> 경전 > 주제별경전연구
 

 전체  칼럼  인물  지명  고사  인용  역사사건

등록일 2010-11-25 조회수 2647
제 목 [지명] 방곡리

 

박우당(朴牛堂) 도전님께서 탄강하신 방곡리는 백두산(白頭山)에서 시작한 국토의 큰 줄기,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남으로 뻗어 내리다가 태백산(太白山)을 거쳐 남서쪽으로 소백산(小白山)을 지나 죽령(竹嶺), 조령(鳥嶺)에 이르러 북서방향으로 뻗어 올라가 이룩된 박달산 기슭 아래 자리한 마을이다.

 

이곳은 현 행정구역상 충청북도(忠淸北道) 괴산군(槐山郡) 장연면(長延面)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원래 연풍군(延豊郡) 면의면(勉儀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양방동, 운곡동, 자약동 일부를 병합하는 과정에 양방동(兩方洞)에서 「네모지다, 때를 당하다, 신선술, 의학」등의 뜻이 있는 「방(方)」자와 운곡동(雲谷洞)에서 「골짜기, 기르다, 동풍」등의 뜻이 있는 「곡(谷)」자를 따서 방곡리(方谷里)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방곡리에서도 도전님 본댁 주위를 병방골(兵防谷)이라 불렀는데 이는 병자호란 때 호병(胡兵)을 막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하며 통상 방곡리의 중심이 되는 마을로 불리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북은 광진리(廣陳里), 동은 추점리(楸店里), 남은 오가리(五佳里), 서는 감물면에 접하고 있으며 오가리에서 발원한 오가천이 동쪽으로부터 마을 앞으로 흐르고, 뒤쪽으로는 독립된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825m의 박달산(朴達山)이 우뚝 솟아있다.

 

그 박달산의 북쪽으로는 주월산(舟越山)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동쪽으로 신선봉(神仙峯), 서쪽으로 성불산(成佛山)이 보필하며 남쪽으로는 군자산(君子山)과 칠보산(七寶山)이 호위하는 지세를 이루고 있다.

 

박달산(朴達山)은 예로부터 밝음과 신령함을 지닌 명산으로 백산(白山)또는 백두산(白頭山)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여기서 「박달」은 순수한 우리말로 박(朴)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으며 달(達)은 통달하다, 이르다 등의 뜻이 있다. 이름에서도 보듯이 박달산은 예로부터 우리민족이 성산으로 신성시 하던 백두산과 그 언어적 의미를 같이하는 명산일 뿐만 아니라 주위에 신선봉(神仙峯), 성불산(成佛山), 군자산(君子山) 등 유불선(儒佛仙)을 상징하는 산들이 호위하는 형세를 보더라도 그 산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신성한 정기가 서려있는 박달산의 기슭으로 도전님의 부친대에 이르러 비로소 이주해와 사셨으니 이 또한 천지공사를 완성할 하느님이신 박우당 도전님께서 탄강하시기 위해 예정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당시 민중들의 가슴속에는 어려운 세상을 구원해 줄 미륵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였으며, 이는 당시 민중들이 가지고 있던 「진사 성인출(辰巳聖人出)」의 간절한 바람과 전 세계적으로 혼란했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결과라 하겠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서 도전님께서 인간 세상에 내려오시니 서기로는 정사(1917)년 11월 30일이고 존휘는 한경(漢慶)이시며 존호는 우당(牛堂)이시니 이분이 바로 구천상제님 도주님의 뒤를 이어 공사를 완성시키신 분이시다.

 

박달산에 대한 다른 전설로는 옛날 천지가 개벽(開闢)할 때 인근 동리가 다 물에 잠겼는데 박달산 꼭대기만 바가지 엎어놓은 만큼이 안 잠기고 남았다 해서 박달산이라 했다고 한다.


이전글 월악산 미륵리 2010-11-24
다음글 수리산 수리사 2010-11-26
 프린트   목록보기
 
 Top
 영농법인 아그로상생  대순회보  이메일서비스
 산하기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