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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1-02-22 조회수 6135
제 목 [지명] 장성 손룡

 

장성은 본래 백제의 고시이현(古尸伊縣)이었는데 통일신라 때에는 갑성군(岬城郡)이라 했다. 고려 초에 갑성군을 장성군으로 고쳐 부르면서 한때는 영광군의 속현이 되기도 했었고, 조선 효종대에 군비 확장에 따라 입암산성을 정비하며 장성현을 장성도호부로 승격시켰다. 고종 32년(1895년)에 현재의 장성군으로 되었는데 고종 33년에 13도제를 시행할 때 노령산맥 이남을 전라남도로 정하며 전라남도 관내에 속하는 군이 되었다.

 

장성군의 북쪽에는 백암산, 입암산과 방장산 등이 연이어 솟아 있는 노령산맥이 길게 늘어서서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담양군과 경계를 이루는 병풍산이 솟아 있다.

 

이 땅의 이름을 장성이라고 한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산이 많아서라고 한다. 노령산맥을 따라 길게 늘어선 산들이 마치 장성(長城)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장성군의 많은 산들 가운데 동남부에 솟은 병풍산(882m)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뻗어 올라가면서 장군봉(558m)을 이루고 다시 매봉(475.1m) 등을 만들면서 북하면의 대악리, 단전리, 용두리까지 뻗어가는데, 특히 장군봉에서 시작되어 북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손룡산이라고 부른다.

 

이 손룡산을 따라 손룡골 9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북하면 대악리의 대악, 풍기, 대방, 장사마을과 단전리의 단전, 신촌마을 그리고 용두리의 용두, 하만, 궐전마을이 모두 손룡골에 포함된 마을이다.

 

손룡산은 다시 대손룡·중손룡·소손룡의 삼손룡으로 구분되는데 이것은 산줄기가 하나로 흐르지 않고 셋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손룡에 해당하는 단전리(단전, 신촌마을) 주위로 손룡산 끝자락에 옥녀봉(玉女峰)이 솟아있다.

 

옥녀봉은 높이가 240m의 나지막한 산인데, 그 속에 천하 대명당의 하나인 선녀직금혈(仙女織錦穴)을 품고 있다. 풍수지리에서 산의 형세가 여성스럽고 아름다우면 대개 옥녀나 선녀의 이름을 붙여 혈명을 짓는데 둘은 혼용하여 쓰기에 선녀직금혈 역시 옥녀직금혈로도 불리고 있다.

 

선녀직금혈이란 선녀가 비단을 짜고 있는 형국을 말한다. 조선조 최고의 풍수가인 홍성문이 그의 <회문산가>에서 『회문혈(回文穴)을 보랴거든 직금도(織錦圖)를 살펴보소』라고 했는데 직금도가 바로 이 옥녀봉의 선녀직금혈을 가리킨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이곳을 대 명당의 하나라 하시며 천지공사에 그 기운을 발음(發蔭)케 하셨다.

 

네 곳의 명당은 순창 회문산(淳昌回文山)의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 무안(務安) 승달산(僧達山)의 호승예불형(胡僧禮佛形), 장성(長城) 손룡(巽龍)의 선녀직금형(仙女織錦形), 태인(泰仁) 배례밭(拜禮田)의 군신봉조형(群臣奉詔形)을 가리킨다.

 

상제님께서는 각 처에서 정기를 뽑는 공사를 행하시면서 먼저 강산 정기를 뽑아 합치기 위해 부모산인 전주 모악산과 순창 회문산의 정기를 뽑아 합치셨고, 다음으로 네 명당의 정기를 종합하시는 사명당(四明堂) 공사를 행하셨다.

 

상제님께서는 백지 한 장의 복판에 사명당(四明堂)이라 쓰시고 종도 이치복에게 『궁을가에 있는 사명당 갱생이란 말은 중 사명당이 아니라 밝을 명자를 쓴 사명당이니 조화는 불법(佛法)에 있으므로 호승예불혈(胡僧禮佛穴)이오. 무병장수(無病長壽)는 선술(仙術)에 있으니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이오. 국태민안(國泰民安)은 군신봉조혈(群臣奉詔穴)이오. 선녀직금혈(仙女織錦穴)로 창생에게 비단 옷을 입히리니』(행록 5-15)라는 말씀을 하셨다.

 

상제님께서는 당시 비결서의 하나로 널리 유포되었던 궁을가의 한 구절을 언급하셨는데 궁을가는 조선조의 이인인 정북창이 썼다고 알려진 비결서를 말한다. 원본은 현재 찾을 수 없고 다만 여러 종의 필사본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그 중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용호대사궁을가》(용호대사는 정북창을 가리킴)에서 상제님께서 인용하신 부분을 찾으면 『조선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君子) 또 낫구나 (…) 사명당(泗溟堂)이 갱생(更生)이라 해외지국(海外之國) 물러간다』는 구절이 있다.

 

상제님께서는 바로 이 『사명당(泗溟堂)이 갱생(更生)이라』는 구절에서 사명당이 중 사명당(泗溟堂)이 아닌 네 곳의 명당이라는 의미의 사명당(四明堂)이라고 고쳐 말씀하시고 공사에 쓰신 것이다.

 

임진·정유 양란의 시기에 나라를 구한 중 사명당(泗溟堂)이 다시 와서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를 구할 것이라고 이해되어진 종래의 <궁을가>의 내용으로는 상극에 지배되는 선천의 현실을 벗어버릴 수 없기에 대신에 순창 무안 태인 장성에 있는 사명당(四明堂)의 기운을 사용하는 공사로 바꾸신 것이다. 여기에는 명당 기운의 발음으로 지기를 조정해 천지를 개벽하고 창생에게 무궁한 복록을 주는 오만 년 후천 선경을 이룩하시려는 상제님의 큰 뜻이 담겨있다.

 

특히 『선녀직금혈로 창생에게 비단 옷을 입히리니』라고 말씀하신 이곳 장성 손룡의 선녀직금혈은 상제님께서 행하신 사명당 공사의 의미를 더 확실히 알게 해준다. 선녀로 하여금 비단을 짜게 하는 것은 상극의 선천을 해원하여 상생의 후천 선경을 이룩하신다는 의미이며, 그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창생에게 입히시려는 것은 후천의 무궁한 복록을 창생이 누릴 수 있도록 한없는 덕화를 내려 주셨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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