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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0-12-10 조회수 4695
제 목 [지명] 종남산 송광사

 

전주에서 진안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따라 12km쯤 가면 종남산 송광사의 안내판을 볼 수 있다. 종남산 송광사는 전라북도 소양면 송광리 종남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전라남도 승주군 조계산 기슭에 있는 같은 이름의 송광사와는 구별해야 한다. 종남산 역시 도주님께서 둔도수, 폐백도수를 보신 밀양 종남산과는 다른 곳이다.

 

일주문 옆에 있는 안내판을 보면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이곳을 지나다가 지세를 보고 큰 절이 들어설 곳이다 생각하여 절터를 잡은 뒤 그 제자들에게 당부하여 절을 짓게 하였다고 적혀 있다. 또 전주의 이극용이 토지를 희사하여 벽암대사(南禪佛道의 宗師:남선불도의 종사)를 모셔다 화엄법회를 50일간 열어 수천 명으로부터 시주를 받아 1622년(광해군14년) 건축을 시작하여 1636년(인조14년) 완공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867년(신라 경문왕7년)에 道義禪師(도의선사)가 절터를 구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이곳에 이르러 땅속에서 풍부히 나는 영천수(靈泉水)를 발견하고 여기가 큰 절을 세울 곳이라 여겨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였다 하여 종남산(終南山)이라 이른다고 한다.

 

송광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종남산 송광사」란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서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금강문(金剛門)이 있는데 여기엔 높이 3m의 금강역사상이 양쪽에 있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 높이 4m의 사천왕상이 있는 천왕문(天王門)에 이른다. 이곳을 나서면 왼편에 十자 모양으로 된 십자각(법종각이라고도 불림)이 보이고 앞쪽엔 국내 최대의 목조여래좌상이 있는 대웅전이 있다. 이곳엔 높이 540cm의 서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약사여래좌상, 왼쪽엔 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그리고 대웅전의 천장과 벽에 그려진 20여점의 그림은 조선후기 민화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대웅전의 정문 바로 오른쪽 기둥이 눈에 뜨일 만큼 앞쪽으로 나와 있고 대웅전 뒤로 돌아가 보면 왼쪽 벽과 뒤쪽 벽에 굵은 나무를 기대어 놓아 대웅전을 지탱하고 있다.

 

송광사와 관련된 전경구절을 살펴보면 행록 1장 19절에 『상제께서 송광사에 계실 때 중들이 무례하게 대하므로 상제께서 꾸짖으시기를 「산속에 모여 있는 이 요망한 무리들이 불법을 빙자하고 혹세무민하여 세간에 해독만 끼치고 있는 이 소굴을 뜯어버리리라.」하시고 법당기둥을 잡아당기시니 한 자나 물러나니 그제야 온 중들이 달려와서 백배 사죄하였도다. 그 뒤에 물러난 법당 기둥을 원상태로 회복하려고 여러 번 수리하였으되 그 기둥은 꼼짝하지 않더라고 전하는도다.』란 구절이 있다. 상제께서 잡아당기신 기둥이 앞쪽으로 나와 있음으로 해서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자연히 뒤쪽, 왼쪽으로 무게가 쏠리게 되어 무너지려는 것을 수리도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굵은 나무로 법당을 받쳐 놓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원래 대웅전은 2층전 이었다고 하며 일주문 역시 남쪽 3km지점 마수교 앞의「나드리」라는 곳에 있었다고 하여 창건 당시의 사찰규모가 웅장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대웅전에는 국내 제일의 목조여래좌상 등에서 이 절이 당시에 손꼽히던 사찰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상제님께서 이런 유서 깊은 사찰의 법당기둥을 잡아당기신 것은 단순히 요망한 무리들을 꾸짖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불기(佛氣)를 뽑으신 상제님의 공사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불가지(佛可止)는 불이 가히 그칠 곳이라는 말이오. 그 곳에서 가활만인 이라고 일러왔으니 그 기운을 걷어 창생을 살리리라…』(예시 54절)

 

『상제께서 이해 여름에 김덕찬을 데리고 불가지에서 신령을 넘다가 고사리를 캐던 노구를 만났도다. 상제께서 그 여인에게 중이 양식을 비노라고 청하시니 그 여인이 없다고 하다가 재차 청하시니 두되 중에서 한 홉을 허락하니라. 상제께서 양식을 받아들고서 덕찬에게 「중은 걸식하나니 이 땅이 불가지라 이름하는 것이 옳도다」고 이르셨도다.』 (예시 56절)

 

또한 「易(역)」에 나와 있는 남쪽시대(2․7火)가 마친다는 뜻에서 뒷산 이름이 종남산(終南山)이 아닌가도 한 번 생각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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