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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선도인 이야기] 20. 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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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원의 자(字)는 방평(方平)이고 동해 사람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하여 일찍이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으며 낭중(浪中)벼슬에 이어 중산대부(中散大夫)에 올랐다.

그는 상서, 시경, 춘추, 예기 등에 능통했고 또한 천문, 하도 낙서(河圖洛書)및 각종 도참의 정수에 통달해 천하 성쇠와 구주(九州)의 길흉화복을 마치 손바닥을 보듯이 하였다.

나중에 관직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수도하여 득도했다는 얘기를 들은 한(漢)의 효환제(孝桓帝)가 지방관(地方官)에 임명하여 억지로 입경시켰으나 끝내 명령은 받지 않고, 궁문(宮門)에 미래를 예언하는 4백여 글자를 남겼다.

 

이에 대노(大怒)한 효환제(孝桓帝)가 그 글을 모두 지워 버렸다. 그런데 표면의 글자를 지우자 판 위의 글자가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

 

왕원은 자손을 남기지 않아 고향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그를 공양했다.

 

같은 군(郡)의 진탐(陳眈)이란 태위(太衛:한나라 때 최고위 무관. 현재의 국방부 장관 해당)가 왕원을 위해 숙소를 마련해 주고 아침저녁으로 예배하며 극진히 모셨다.

진탐은 그에게 절을 하며 그의 복을 빌었을 뿐 그에게 도를 배운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왕원이 진탐의 집에서 40년 머무는 동안 진씨 가족은 물론 노비까지도 병이 들거나 죽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고, 가축과 곡식 모두 번성했다.

 

어느 날, 왕원이 진탐에게 이별을 예고하고 죽었다. 선인(仙人)이 되었다고 생각한 진탐은 왕원의 유해를 그대로 두었다. 그러나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밤이 되자 의관과 복장만 그대로 있고 유체가 보이지 않았다.

 

왕원이 죽은 지 100일 만에 진탐도 죽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왕원의 도를 터득하여 선인이 되었다거나 또는 진탐이 죽을 때가 되어 왕원이 떠난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한편 죽은 왕원은 동쪽 괄창산(括蒼山)으로 들어가기 위해 서문(署門) 채경(蔡經)의 집에 머물렀다.

 

채경은 평민에 지나지 않았지만 선인이 될 수 있는 골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기에 그 집에 유숙한 것이다. 왕원은 채경에게 몸을 시해(屍解)해서 선인이 되는 요령을 일러주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 뒤 채경의 몸은 불붙은 돌처럼 열이 높은 상태가 사흘 동안 계속되더니 스스로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자 갑자기 그의 형체가 사라져 버렸다. 이불속엔 가죽만 남아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은 것과 같았다.

 

그 후 10년이 되던 날, 용색에 원기가 넘치고 머리털도 검게 된 채경이 불쑥 집으로 돌아와서 7월 7일에 왕원이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 등 접대준비를 지시했다.

 

그날이 되자 과연 원유관(遠遊冠)을 쓰고 붉은빛의 웃옷에 범의 머리를 장식한 대대(大帶)와 오색의 끈을 달고, 칼을 찬 대장군 의장차림의 왕원이 색이 다른 다섯 필의 용이 끄는 우차(羽車)를 타고 나타났다. 잠시 채경의 양친과 형제를 만나고 나서 사람을 시켜 마고(麻姑)에게 초대장을 보내 만나기를 청했다.

 

5백 년 동안 만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던 마고는 기꺼이 화답했다. 그로부터 2각(刻)쯤 지나 마고가 도착하자 채경과 집안사람들 모두 반가이 맞았다. 마고의 시종은 왕원의 절반쯤이었다. 마고는 18,9세쯤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머리는 쪽을 쪘으며 나머지 머리는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무늬가 있는 치마는 금을 칠한 것도 아닌데 광채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마고가 왕원에게 절을 하니 왕원도 일어나 답례했다.

 

황금접시와 옥 술잔에 담겨진, 각종 꽃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향기가 밖에까지 풍겼다. 마고는 기린(麒麟)의 건육을 먹으며, 동해가 세 번이나 상전(桑田)으로 변하는 동안 왕원을 만나보지 못했음을 술회하며 바다가 점점 육지로 변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좋은 음식을 장만하여 초대해준 답례로 마고는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채경의 아내와 어머니를 오라고 하여 쌀을 뿌려 단사(丹沙)로 변하게 하여 더러운 것을 씻는 의식을 치러주었다.

 

왕원 또한 채경의 아내에게 천궁(天宮)의 주방(廚房)에서 나온 향기롭고 독한 술을 주었다. 그 술은 매우 독하여 한 말의 물을 한 되의 술에 타서 마셔야 되는 것으로 지상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채경의 이웃인 현의 관리를 지낸 진이 왕원이 신인임을 알고 밑에서 심부름하기를 청했다.

 

그러나 진을 살펴 본 왕원은 "그대는 마음이 불순하여 선도를 가르칠 수 없다. 대신 지상의 주인이 될 직책을 제수 받을 것이다." 라며 호부(護符) 한 통과 어음 한 장을 조그만 상자에 넣어 진에게 주었다. 이것으로 진을 선인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수명을 100세를 넘기고, 재앙을 막고 병을 고칠 수 있게 했다.

 

그는 왕원이 내려준 호부로 수백 호에 이르는 신봉자를 두었으나 그가 110세에 죽고 나서는 호부의 효험이 모두 없어졌다.

 

왕원은 곤륜산에 있으면서 나부산(羅浮山)과 괄창산 등에 궁전을 두고 왕래하며 천계의 관리 사무를 보았다. 하루에도 천상을 왕복하기를 십 수회 하고, 지상의 오악에서 행해지는 사람의 생사에 관한 일 모두를 관장했다.

 

왕원이 외출할 때는 백관(百官)을 수행시키고 누른빛의 기린을 타고 수 명의 시종(侍從)을 데리고 다녔다. 여행할 때는 산림(山林)을 아래로 보고, 항상 지상 수백 길의 곳을 다녔다.

 

가는 곳 마다 산과 바다의 신이 모두 와서 봉영하고 배알했다.

 

수십 년 후 채경이 집에 돌아와 보니 활달자재(豁達自在)한 필적의 왕원이 진씨에게 보낸 편지가 있었다. 그래서 그전에는 왕방평, 이름이 원(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후부터 알려지게 되었다.

 

진씨 집에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왕원이 썼다는 편지와, 호부어음을 조그만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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