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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선도인 이야기] 18.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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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당대의 명의인 손사막이 남긴 저서인 <천금방>에는 뛰어난 의술로 많은 환자들의 병을 고쳐준 신선 동봉(동봉)의 일화가 전해져 온다.

동봉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후관(候官) 사람으로 후관현 복산 밑에 살았으며 자(字)는 군이(君異)이다. 오(吳)의 선왕(손권) 때 후관현의 지사(知事)가 되었으나, 동봉은 일을 할 줄 몰라 관청을 그만 두었다.

 

다시 50여 년이 흘러 또 후관(候官)에 가 있을 기회가 있었다.

 

본래 있던 관리들은 모두 나이를 먹어 백발이 되었으나 동봉의 용모는 옛날과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대는 선도(仙道)라도 터득하고 있는 것입니까? 옛날 뵈었을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벌써 백발(白髮)이 되었는데 그대는 도리어 젊어졌으니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하고 물었다.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하고 동봉은 대답하는 것이었다.

 

교주(交州)(교주는 지금의 광동, 광서에서 베트남에 이르는 지역)의 자사(刺史)가 된 두섭(杜燮)이 독(毒)을 맞아서 병사(病死)했다. 죽은 지 이미 3일이 지났다.

 

동봉은 즉시 달려가서 환약(丸藥)을 지어 입 속에 넣고 물을 부어 다음 사람을 시켜서 머리를 들어 올리게 하고 흔들어서 약을 소화시키게 했다. 이윽고 수족(手足)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더니 얼굴에도 차츰 혈색이 돌아오고 반나절이 되자 일어날 수가 있었으며 그 후 4일 만에 말을 하게 되었다.

 

두섭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죽었을 때에는 멍하니 꿈속과 같은데, 언뜻 십 수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두섭을 데리고 겨우 문이 하나인 감옥으로 인도하고 문밖에서 흙으로 막아 버렸다.

 

이 때 문밖에서 "태을신께서 사자를 보내어 두섭을 부르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막았던 흙을 떼어내는 소리가 들리고 끌려나왔는데 붉은 덮개를 한 마차가 있고, 수레에 걸터앉아 있는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칙사를 표시하는 절(節)을 가지고 두섭을 수레에 태우더니 집 앞 까지 데려다 주어서 살아났다.

 

이에 두섭은 예를 갖추고 "놀라운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겠습니까?"하고 나서 동봉을 위해서 뜰 안에 누각(樓閣)을 세웠다. 동봉은 딴 것은 먹지 않고 다만 말린 대추만을 먹고 술을 조금 마셨을 뿐이므로 두섭은 하루에 세 번 이것을 준비했다.

 

동봉이 식사를 하러 올 때는 새처럼 날아와 앉아서 먹었으며, 다 먹고 나면 다시 날아서 돌아갔기 대문에 누구 한 사람 눈치 채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1년이 넘게 지났을 때 동봉은 두섭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두섭은 울면서 만류했지만 동봉은 머물려 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시는지 큰 배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묻자 동봉은 "배는 필요 없지만, 다만 관(棺)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했다.

 

두섭이 즉시 그 것을 준비해 주었더니 이튿날 정오 무렵에 동봉은 죽었다.

 

두섭은 곧 입관(入棺)해서 가매장(假埋葬)했다. 7일이 지난 후 동봉의 부탁을 받았다고 하면서 용창(容昌)에서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두섭님에게 예를 올리고 싶으니 몸을 자애(自愛)하시도록 해주시오."라는 말을 전했다. 두섭이 이 말을 듣고 관을 열어 보니 그 속에서 비단 조각 하나가 잇을 뿐이요, 관 한족에는 사람의 모양이 그려져 있고 한쪽에는 붉은 빛으로 호부(護符)가 그려져 있었다.

 

동봉은 그 뒤에 예장(豫章)의 여산(濾山) 산기슭으로 돌아와 살았다.

 

동봉은 산에 살면서 농사는 짓지 않고 매일 사람들을 위해서 병을 치료해 주는 것으로 일을 삼았으나, 그러면서도 약값은 받지 않았다. 병이 다 나아서 환자가 사례를 하고자 하면 결코 돈을 받지 않고, 대신 집 뒤에 있는 동산에 살구나무를 심게 하였다.

 

중병(重病)이 나은 사람에게는 살구나무 다섯 그루를 심게 하였으며, 병이 가벼운 자에게는 한 그루를 심게 하였다.

 

이렇게 두어 해 계속하다 보니 뒷동산은 울연(鬱然)히 살구나무 숲이 되었다.

 

그 뒤 살구 열매가 무수히 맺히자 동봉은 숲속에 조그만 초가집을 짓고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붙였다.

 

"살구를 사고 싶은 사람은 주인에게 말할 것 없이, 다만 곡식 한 줌을 나무 밑에 놓아두고 그 곡식만큼 살구를 가져가도록 하라."

 

주인 없는 숲에서 사람들은 곡식과 살구를 교환해 가곤 했다.

 

그런데 만일 곡식을 조금 놓고 살구를 많이 가져가는 자가 있으면, 갑자기 숲속에서 많은 버들이 나와 소리쳐 겁을 주었으므로 그와 같은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곡식을 조금 놓고 살구를 많이 가지고 가려고 하였다가 범들의 소리에 깜짝 놀라 황급히 살구를 들고 도망치다가 길가에 엎어졌다 집에 돌아와 보니, 놓고 온 곡식의 분량과 같아져 있었다.

 

수확량이 많아지자 동봉은 해마다 살구를 팔아서 곡식을 사들였다. 그리고 그 곡식을 이내 빈민(貧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식량(食糧)이 떨어진 나그네에게 주는 것만도 1년에 2만여 석(石)이나 되었다 하니 그 양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살구로써 건강을 지켰으며 동봉은 많은 살구를 수확하여 이것을 곡식으로 바꾸어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나그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동봉에게는 양녀가 있었는데, 딸의 나이 15세가 된 어느 날 동봉은 구름속으로 뛰어 올라가 버렸다.

 

동봉은 인간계에 산 지 3백 여 년이 되었으나 용모는 언제나 30대의 사람과 같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숲을 의사 동봉 신선의 살구나무 숲 즉 행림(杏林)이라고 부르면서 동봉을 기리게 되었다.

 

그 후로 "살구나무 숲이 있는 곳에는 염병이 돌지 않는다."는 속담이 생겼으며, 행림은 의원이나 의학계에 종사하는 사람, 또는 의학계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 한의과 대학생들의 축제를 대부분 행림제 라고 부르며, 대한 한의사 협회의 공식마크가 살구꽃 모양인 점은 바로 이 일화에서 연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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