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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선도인 이야기] 17. 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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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현(葛玄)은 한 환제(漢 桓帝) 연희(延禧) 7년(164)에 태어났다.

 

갈현의 자(字)는 효선(孝先)이다. 그의 아버지 갈효유는 원래부터 도교를 독실하게 신봉하였는데 갈현이 7세 때 부모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셨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능히 자립할 수 있었다.

 

13세에는 이미 고금의 각종 전적을 두루 널리 익혀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는 곡식을 끊고도 몇 해까지 굶주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으며 또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피운 후 그 위에 앉아서 나무가 다 타도 의관(衣冠)에 불이 붙는 일이 없었다.

 

또 술을 한 섬이나 마시고 깊은 골짜기의 차가운 물속에 들어가 자다가 술이 깨면 나왔는데 몸에는 물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고 한다.

 

일찍이 좌원방(左元放 : 좌좌)에게 술법을 배워 《태청단경(太淸丹經)》, 《구정단경(九鼎丹經)》, 《금액단경 金液丹經》 및 구결(口訣) 등을 전수(傳授)받았다.

 

그 책에는 호풍환우를 일으키고 척사(斥邪), 치병(治病) 등에 주로 사용하는 호부를 만드는 법과 복용하면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된다는 선단(仙丹) 또는 금단(金丹)으로 불리는 영약(靈藥)의 제조법이 적혀 있다고 한다.

 

선약의 제조법은 갈현이 제자 정은에게 전수했고, 후에 그의 종손인 갈홍이 이를 정은에게서 배워 그 비법을 모두 터득했다.

 

갈현은 금단을 만드는 것보다 호부를 주로 사용했고 다른 누구보다도 호부(護符)를 쓰는 것에 능했다고 한다.

 

그가 여행을 갈 때면 언제나 수십 장의 호부를 몸에 지니고 다녔는데 한번은 배 위에서 어떤 사람이 그에게 호부에 대해 물었다.

 

『당신의 호부는 어떻게 쓰는 겁니까』

 

그러자 갈현은 호부 한 장을 꺼내 강에 흘려보냈다. 호부는 강물을 따라 하류로 흘러갔다. 그리고 또 한 장을 꺼내 강물로 흘려보내니 이번에는 이 호부가 물살을 거스르며 상류를 향해 올라가는 것이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갈현은 또다시 한 장의 호부를 꺼내 강물 위에 올려놓았다. 호부는 가만히 그 자리에 멈춰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었다.

 

잠시 후 갈현은 세 장의 호부를 한 곳에 모아 원래대로 품속에 집어넣었다.

 

호부는 특히 귀신을 쫓아내고, 병 치료하는 데에 효과가 컸다.

 

어느 날 갈현은 여행을 하다가 어떤 사당 앞을 지나고 있었다. 이 사당의 신은 그 앞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백 보(步)의 거리에 가까이 오기 전에 말에서 내리게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경내에는 수십 그루의 큰 나무가 있고 나무 위에는 새가 무리를 지어 있어 아무도 손을 대는 자가 없었다.

 

갈현이 수레를 타고 지나가면서 내리지 않자 갑자기 큰 바람을 일으켜 갈현의 수레를 쫓아내려 하니 먼지가 하늘을 덮고 종자(從者)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뒤로 돌아서려 했다.

 

이에 갈현은 크게 노하여,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하고 손을 들어 바람을 막으니 곧바로 바람이 멎었다.

 

갈현이 호부 한 장을 꺼내 사당 안에 던지자 나무 위의 새가 모두 땅에 떨어져서 죽었다. 그 후 수일이 지나자 사당 근처의 나무는 한여름인데도 모두 마르고 드디어 사당의 건물(建物)에도 불이 나서 자취도 없이 타 없어졌다.

 

갈현은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들의 어려움을 돕는 것에 적극적이었다.

 

그가 여행길에 생각지도 못했던 친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있으면 이 사람을 길가 나무 그늘로 불러서 술을 대접했다.

 

풀을 베고 나무를 꺾어 술잔 위에 놓으면 즙(汁)이 샘물처럼 흘러 내렸다가 잔에 가득 차면 그치는데 이것을 마시면 훌륭한 술이 되었다.

 

또 흙과 돌, 풀과 나무로 안주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입에 넣으면 모두 사슴고기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아무리 해 보아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갈현을 숭앙하여 그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 많이 전해졌다.

 

《신선전》과 《태평광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오나라의 황제 손권이 갈현을 만나서 높은 벼슬자리를 주려고 불렀다.

 

갈현은 빈객(賓客)으로서의 대우를 받으며 항상 유연(遊宴)을 함께 하고 있었다.

 

하루는 연회 자리 위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길 위에서는 사람들이 나와서 비를 빌고 있었다.

 

손권이 『백성들은 비를 빌고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없는가』 하자 갈현은 『이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하고, 호부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지더니 큰 비가 내려 뜰의 평지에도 한 자가 넘게 물이 고였다. 손권이 『그대는 이 물속에 물고기가 있게 할 수 는 없는가』 하자, 『좋습니다.』 하고 또다른 호부를 꺼내 물속에 던지자 갑자기 한두 자 길이나 되는 큰 고기가 백여 마리나 나타나 물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또 『저것은 먹을 수가 있는가』 하고 묻자, 『먹어도 됩니다.』 하며 잡아서 요리(料理)를 시켰더니 전부 진짜 물고기였다.

 

그 후 갈현의 명성이 점점 더 크게 퍼지자 그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갈현은 그의 초대를 계속 거절했는데 나중에는 막무가내로 사자를 보내와서 하는 수 없이 사자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갈현은 수백 걸음 정도 걸어가다 심한 복통을 일으켜 땅바닥에 엎드린 채 어이없게도 죽고 말았다.

 

사자는 깜짝 놀라 허둥대며 갈현의 머리를 들어올렸지만 그만 쑥 빠져버렸다. 팔을 잡아당기니 그것도 떨어지는 것이었다. 사자가 몸을 만지는 곳마다 모두 떨어져 갈현의 유체는 길거리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게다가 순식간에 썩기 시작해 구더기까지 들끓었다.

 

사자는 더욱 당황해 갈현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또 하나의 갈현이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사자는 다시 길거리로 달려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에 있어야할 갈현의 유체는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1103년 송(宋) 휘종(徽宗)이 갈현을 충응진인(沖應眞人)으로 추봉했으며 1243년에는 이종(理宗)이 다시 충응부우진군(沖應莩佑眞君)으로 추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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