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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선도인 이야기] 16. 조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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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구는 팔선 가운데 가장 늦게 출현한 실존 인물이지만 그에 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는 의외로 가장 적다.

 

이런 이유로 조국구는 단지 팔선이라는 숫자를 채우기 위해 만든 가상의 인물이라는 설도 떠돌고 있다.

 

역사상 실존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조국구의 생애에 관해서는 몇 가지의 견해가 있다.

 

첫 번째는 조국구가 송나라 때의 조일(曹佾)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확실히 이러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송초의 명장으로 이름 높은 노국공(魯國公) 조빈(曹彬)의 손자이며, 그의 누이는 바로 송 인종(仁宗) 조정(趙禎)의 황후이다.

 

조황후는 중국 역사상 유능했던 황후들 중의 한 명으로 꼽히고 있는데, 역사서에서는 그녀의 성품이 아랫사람에게 자애롭고 검소하며 농사를 중시하여 항상 금원(禁苑)에서 농사를 짓고 누에를 쳤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지혜와 용기를 겸비하여, 장수의 가문에 부끄럽지 않은 여성이라고 칭송되었다. 신종(神宗)이 즉위하자 태황태후가 되었고, 왕안석(王安石)의 변법(變法)을 극력 반대하여 보수파의 배후가 되었다.

 

조황후의 동생인 국구(國舅) 조일의 자(字)는 공백(公伯)이다. 그는 성정이 온화하고 음률에 정통하며, 바둑과 활쏘기를 잘하고, 시 짓기를 즐기며, 예술에 대한 재능이 풍부하였다고 한다.

 

그의 누이 조황후의 후원에 힘입어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의 관직을 지냈고, 후에 제양군왕(濟陽郡王)에 봉해졌다.

 

조일은 일처리에 총명하고 처신에도 능한 인물로, 당시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음에도 그는 오히려 편안하게 지내었고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조일이 이처럼 평탄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한 번 궐문을 나서면 국사(國事)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일찍이 신종은 대신들에게, 『조왕(曹王)이 비록 근친(近親)이어서 중히 활용하지만 단정하고 공손하여 과실이 적으니, 참으로 순신(純臣; 정직하고 진실한 신하)이구나』라고 말하였다.

 

바로 이 「순신」이라고 했던 조일은 자신이 견지하는 처세의 철학에 의지하여, 자유롭고도 여유있게 세까지 살았다. 이것은 당시에는 흔치않은 나이로, 조일은 복(福)ㆍ녹(祿)ㆍ수(壽)의 세 가지를 온전히 갖추었다고 말할만하다.

 

그러나 역사적인 기록에서는 그가 어떻게 해서 신선이 되었고 팔선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 이것은 바로 청대의 학자인 조익(趙翼)이 《해여총고》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국구(曹國舅)는 조태후(曹太后)의 동생이라고 전해진다. 《송사(宋史)》를 살펴보면 자성광헌태후(慈聖光獻太后)로 기록되어 있는 조태후의 동생인 조일(曹佾)은 세의 나이에 죽었는데, 일찍이 신선이 되었다는 일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밖에 별도로 국척(國戚)이면서 신선술을 배웠다는 이도 없으니, 곧 전해오는 이야기는 허황된 것이다.』

 

이처럼 조국구가 어떻게 팔선의 반열에 올랐는지는, 확실히 까닭을 알 수 없는 부분이 다소 있다. 그나마 조국구에 관한 또다른 이야기에서, 약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그가 북송(北宋) 인종(仁宗) 때 조황후(曹皇后)의 첫째 동생인 조경휴(曹景休)라는 것이다. 국구(國舅)는 이름이 아니라 황후의 동생이기에 부르는 칭호이다.

 

《역대신선사(歷代神仙史)》 권의 〈송선열전(宋仙列傳)〉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경휴는 타고난 성품이 순선(純善)하고, 부귀를 기뻐하지 않으며, 청허(淸虛)를 매우 동경하였다. 그런데 조국구에게는 방자하고 제멋대로인 동생이 있었는데, 후에 죄를 짓고 도주하였다. 조국구가 이를 매우 부끄러워하여, 마침내 산 속으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그곳에서 현학(玄學)의 이치를 깊이 생각하며 수도에 전념하였다.

 

그는 시골사람의 복장에 갈건(葛巾)을 쓰고 다녔으며, 열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곤 하였다.

 

하루는 종리(鍾離 : 종리권)와 순양(純陽 : 여동빈) 두 조사를 만났는데, 그들이 먼저 조국구에게 『듣자하니 그대가 마음을 닦고 기른다는데, 무엇을 기른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조국구가 『도를 기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다시 『그렇다면 도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었다.

 

조국구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두 조사가 다시 『하늘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자, 조국구는 대답하지 않고 다만 손을 끌어당겨 가슴을 가리켰다. 두 조사가 웃으며, 『마음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도이다. 그대는 본래의 면목을 직접 보았구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두 조사는 마침내 그에게 비술(秘術)을 전해주었고, 이를 통해 조국구는 신선의 반열에 들었으며, 《신선전(神仙傳)》을 남기고 세상에 문집을 전하였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신선통감(神仙通鑑)》에도 실려있다.

 

조경휴의 동생은 이름이 조경식(曹景植)인데, 권세를 믿고 경거망동하여 일찍이 불법으로 사람을 죽였다.

 

포증(包拯)이 체포하여 사건을 심리하자 곧바로 죄를 인정하였다.

 

조경휴는 이를 매우 부끄러워하여, 세상을 떠나 마침내 산속에 은거하며 정심으로 수도(修道)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팔선은 민간에서 신앙되는 대중적인 신선들이다. 이들 중에 조국구는 가장 늦은 송대(宋代)에 신선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누이가 황후가 되며 황족으로 많은 권세를 누릴 수 있었지만 속세의 명리를 초탈하고 수도에 뜻을 두어 산속에 은거하여 도를 닦았다.

 

그에게 도를 전해준 스승은 팔선가운데 종리권과 여동빈 두 신선으로 알려져 있다.

 

후대에 그려진 팔선의 모습 가운데에서, 조국구는 갈건을 쓰고 시골사람의 차림을 한 은사(隱士)의 복색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몸에 붉은 관포(官袍)를 두르고 머리에는 사모(紗帽)를 쓰고 손에는 그의 관직을 나타내는 홀을 들고 있으며 뺨에는 두부괴(豆腐塊)를 칠한 관리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뺨에 칠을 한 것은 그를 다소 희화시켜 그린 것이며 오랜 세월동안 팔선의 한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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