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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선도인 이야기] 25.화타(華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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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화살 맞은  관운장의 팔 수술한 외과수술의 비조 후한말의 신의(神醫)

화타(華陀, ? ~ 208년)는 중국 후한 말의 의사로 이름을 부(敷)라고도 하며 자는 원화(元化)이다. 지금의 안후이성(安徽省) 보셴(毫縣)에서 태어났다.

 

동시대의 동봉(董奉)과 <상한론(傷寒論)>의 저자인 장기(자가 중경(仲景)으로 흔히 "장중경"으로 알려져 있음)와 더불어 건안삼신의(建安三神醫)로 불린다. 외과·내과·부인과·소아과·침구 등 의료 전반에 두루 능통하였지만 외과의 비조로 통할 만큼 외과에 특히 뛰어났다.

 

그는 치료법이 다양하면서도 처방이 간단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신체 단련을 매우 중요시하여 이를 통해 체질 증강과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주장하였고, 호랑이, 사슴, 곰, 원숭이, 새 등 다섯 가지 동물의 동작과 자태를 모방하여 신체를 단련 하는 「오금희(五禽戱)」라는 실용적인 체조를 제창하였다. <삼국지연의>에는 오나라의 주태(周泰), 촉나라의 관우(關羽), 위나라의 조조를 비롯한 많은 사람을 치료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후베이성(湖北省) 징저우(荊州)를 수비하고 있던 관우는 한수(漢水)유역까지 세력을 확장하려고 번성을 공격했을 때 성을 지키고 있던 위나라 병사가 쏜 화살에 관우의 오른쪽 팔이 부상당하였다. 이를 치료하였으나 완쾌되지가 않고 있었는데 때마침 그 소식을 듣고 화타가 찾아왔다.

 

『저는 패국 초군 사람입니다. 성은 화이며 이름은 타이고 자는 원화입니다. 관우장군이 천하의 영웅이라고 듣고 지금 독화살을 맞아 고초를 겪고 계시다기에 특별히 치료하러 왔습니다.』

 

 성문을 지키고 있던 관평이 『전에 동오 주태를 치료하신 분이 아닙니까?』하고 크게 기뻐하며 곧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화타를 장막 안에 들어오게 하여 관우공에게 안내했다.

 

 이때 관우공이 본래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면 그로인해 군심이 태만해질까봐 염려하여 소일하지 못하고 그저 마량과 바둑을 두고 있던 중이었다. 관우공은 크게 기뻐하며 화타에게 소매를 걷고 부상 입은 팔을 보였다. 화타가 말하길, 『이는 쇠뇌화살이 오두의 약에 적중되어서 직접 뼈에 들어갔습니다.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이 팔은 쓰지 못하게 됩니다.』

 

『어떤 약물을 사용해 치료합니까?』 『저는 스스로 치료법이 있습니다. 단지 군후께서 두려워할까 두렵습니다.』 관우공이 웃으면서 말하길, 『나는 죽음을 돌아가듯이 보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겠소?』 『고요한 곳에 한 기둥을 세우고  위에 못으로 둥글게 돌려 구멍을 판 후 군후께서 고리 안에 팔뚝을 넣고 줄로 맨 연후에 머리를 싸매야 합니다. 제가 뾰족한 칼을 사용하여 피부와 살을 절개하며 직접 뼈에 이르러서 뼈 위에 화살 독을 긁어내어 약을  붙이면서 실로 입구를 봉합하면 바로 괜찮을 것입니다. 단지 군주께서 두려워할까 염려될 뿐입니다.』 관우공이 웃으며, 『그렇다면 쉽소! 어찌 기둥을 쓰겠소?』 마침 술상이 차려져 관우공은 몇 잔의 술을 마시며 한편으로는 마량과 바둑을 두고 팔뚝을 뻗어 화타를 시켜 절개하게 했다. 화타는 뾰족한 칼을 손에 들고 한 소교를 시켜 팔뚝 아래에 피를 받을 큰 동이를 받들게 했다. 화타가 말하길, 『제가 곧 손을 쓰겠습니다. 군후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그대는 의사로 치료를 맡았소. 내 어찌 세상의 속된 무리처럼 통증을 두려워하겠소?』

 

관우의 말에 화타가 칼을 내려서 피부와 살을 베어 절개하며 직접 뼈에 이르니 뼈 위가 이미 푸른색이었다. 화타가 칼을 사용하여 뼈를 긁어내니 슥삭슥삭 소리가 났다. 장막 위와  아래에서 보는 사람 모두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관우공은 술을 마시며 고기를 먹고 담소하며 바둑을 두면서 전혀 통증과 고통을 느끼는 안색이 아니었다. 잠시 상처 부위에서 흘러내린 피가 한 동이 가득하게 되자 화타는 독을 다 벗겨내고 약을 그 위에 붙이고 실로 봉합하였다. 관우공이 크게 웃고 일어나면서 여러 장수에게 말하길 이 팔을 예전과 같이 펼 수 있으며 통증도 없다고 하면서 평소와 같이 흔들어 보였다.

 

화타가 말하길, 『저는 의사로 한평생 살았어도 이런 모습을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군후께서는 진실로 천신입니다!』 화타는 관우의 담력에 감동하였고 관우는 화타의 의술에 감탄하였다.

 

그 후 조조가 중병에 걸리자 화타를 불러 치료케 하였다. 화타는 전에 간단한 침구 치료로 조조가 앓고 있던 두통을 치료해 준 적이 있어서 이번에 조조를 치료하러 가게 된다면 그가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했다. 화타는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오랜 기간이 필요하니 잠시 집에 갔다 온다고 말하고서 집으로 돌아가 아내의 병을 핑계로 여러 차례 조조에게 가지 않았다.

 

 조조는 화타가 차일피일 미루고 오지 않자 분노하여 화타의 아내가 정말 병에 들었는지 살펴보고 참이거든 휴가를 더 주되 거짓으로 판명되거든 압송하라고 하였다. 결국 화타는 거짓이 발각되어 압송되었다. 화타는 죄를 시인했고, 순욱(荀彧)이 조조에게 화타를 살려줄 것을 청했으나 조조는 화타를 『쥐새끼 같은 자』라고 하며 듣지 않고 화타를 고문하여 죽였다. 나중에 아들 조충(曹沖)이 병들어 죽게 되자 조조는 그제야 화타를 죽인 것을 후회하였다.

 

 죽음을 예상한 화타는 옥졸에게 『사람을 살릴 수 있다』라고 하며 책 한 권을 주려 했으나 옥졸은 불법행위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거절했고 화타도 강요하지 않고 불에 태워버렸다. 그래서 그의 저서인 <화타내사(華陀內事)><화타방(華陀方)><청낭서(靑囊書)>등이 있었다고 하지만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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