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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논단] 심우도(尋牛圖)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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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우도 : 득도하는 과정을 소와 사람으로 설명한 그림 -

 

심우도라는 말은 ‘소를 찾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소는 곧 도(道)를 상징한다.

주로 불가(佛家)에서 득도(得道)하는 과정을 대중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하는 방편으로 널리 사용하였다.

여기에서는 유가의 심(心)의 관점에서 심우도를 고찰해 보기로 한다. 심우도를 이해하는 데한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

 

 

유가에서의 마음(心)

 

유가의 옛 성현들은 마음이 유래한 곳이 하늘이라고 하고 그것을 소위 ‘천명(天命)’ 또는 ‘천리(天理)’ ‘천성(天性)’이라고 명명했다. 이 천성은 순수하고 잡됨이 없어 지선(至善)하다고 하는데 이것을 사람이 받아서 ‘사람의 성(性)’이 된 것이라고 하였다. 하늘의 순수한 천성을 형기(形氣)가 있는 사람이 소유하게 되면 타고난 기질에 따라 천차만별로 발현되어 각자의 개인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고 하며 사람의 기질은 선천적으로 태어나는 곳의 풍토를 영향 받아 형성된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은 성에 기반한 순수한 마음을 당연히 가지게 되며 이와 동시에 성과 사람의 기질이 결합하여 각자의 특성을 구분 짓는 또 하나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인간의 지각활동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지각활동을 유가에서는 성과 구별하여 정(情)이라고 표현한다.

 

성은 천리(天理)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지극한 선(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것이 동작함과 동시에 외부의 사물과 접촉하면서 희노애락의 정이 생겨나는데, 이 과정에서 비로소 선과 악의 구별이 생겨난다고 한다. 성이 온전하게 발산되어 외부의 사물과 접촉한다면 모든 정이 성의 선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발생되지 않지만, 인간의 혼탁한 기질의 구속을 받아 성의 선함이 불완전하게 발산되어 악(惡)이라는 불순물이 생겨난다고 한다. 성은 완전한 천리이므로 여기에는 너와 나, 이것과 저것, 안과 밖의 구별이 존재할 수가 없으나 인간의 사사로운 기질에 의한 정이 발산되면서 남과 구별되는 「자기(自己)」라는 존재가 생성되고 이것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 안과 밖이 존재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성리학에서는 성은 심의 체(體)요, 정은 심의 용(用)이니 심은 성과 정을 포괄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심은 성과 정 사이에 거하면서 안으로 향하면 성이요, 밖으로 향하면 곧 정인 것이니, 심이 성과 정을 통솔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성은 태극과 같고 심은 음양과 같아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이니 성이라는 것은 항상 마음속에 있게 되는 것이고, 정이라는 것은 성의 동(動)이며 성이라는 것은 심의 이(理)이니 심이라는 것이 성정(性情)의 주인이라고 하기도 한다. 《전경》에서도 「심이라는 것은 귀신의 추기요, 문호요, 도로(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라고 함으로써 마음이 성과 정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황극경세》에서 성은 신이요, 정은 귀라고 말한 것에 근거한 해석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마음은 성과 정을 포괄하면서 통솔하고 운용하는 위치에 있으나 성과 정과 심은 태극과 음양처럼 서로 분리시킬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항상 동시 다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심우도의 소와 사람

 

가) 소와 사람-도심(道心)과 인심(人心)

 

《서경(書經)》의 「人心惟危(인심유위) 道心惟微(도심유미) 惟精惟一(유정유일) 允執厥中(윤집궐중)」 이라는 글을 단서로 마음에 대하여 주희는 《중용장구》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음의 허령과 지각은 하나일 뿐인데 인심과 도심의 다름이 있다고 한 것은 혹은 그것이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나오기도 하고 혹은 그것이 성명(性命)의 올바름에서 근원하여 지각을 하는 것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혹은 위태로워 편안하지 못하고 혹은 미묘하여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으므로 비록 심히 지혜로운 자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으며, 또한 이 성(性)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도 없으므로 비록 심히 어리석은 자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 이 두 가지가 아주 작은 사이에 섞여 있어서 다스릴 바를 알지 못하면 위태로운 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것은 더욱 은미해져서 천리의 공(公)이 끝내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정(精)이라는 것은 이 두 가지 사이를 살펴서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일(一)이라는 것은 본심의 올바름을 지켜서 분리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에 종사하여 조금도 사이가 절단됨이 없이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일신의 주장이 되게 하고 인심으로 하여금 매양 그 명령을 듣게 하면 위태로운 것이 편안하게 되고 은미한 것이 드러나게 된다.』

 

즉 성과 관련한 마음은 곧 도심을 말하고 사사로운 인욕이 개입된 정과 관련한 마음은 곧 인심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에 따라서 심우도에 등장하는 주요 사물인 소는 성(性) 또는 도심을, 사람은 인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기로 한다.

 

나) 소의 색깔 변화와 그 의미

 

위에서 보듯이 사람에게는 도심과 인심이 혼재하고 있어서, 도심은 도심대로, 인심은 인심대로 서로 통제하고 명령하려 한다. 이와 같은 마음의 2원적인 명령체계를 그대로 두게 되면 마음의 통제작용에 극심한 혼란이 발생하게 되고 형기를 가진 인간은 도심이 인심을 이기기 어려우므로 결국 천리에 반하게 되어 위태롭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위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의 명령체계에 있어서 도심을 위주로 하는 일원화 작업이 필수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곧 위에서 설명한 「유정(惟精)」의 일이다. 이것은 의리를 정밀히 하여서 도심과 인심을 섞이지 않도록 아주 정밀하게 분리해 내는 작업이므로 곧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일이며 기질을 이치에 순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분리작업이 마무리 되어야 비로소 마음의 명령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한 「유일(惟一)」의 일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심우도의 소의 색깔이 수도의 경과에 따라 흰 색깔이 점점 드러나는 것은 곧 유정(惟精)의 수도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소의 흰색은 무색이며 순수함을 상징하므로 도심 또는 성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종단 대순진리회의 심우도

 

우리 종단에는 6폭 또는 9폭의 심우도가 그려져 있는데, 여기서는 9폭의 심우도를 기준으로 고찰하면서 6폭

심우도의 내용을 곁들여 보기로 한다.

 

가) 첫 번째 심우도

  ▲ 9폭 심우도 1

 

소년이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장면으로 6폭 심우도에서는 이것을 「심심유오(深深有悟)」 라고 표현하고 있다. 소년이 무엇을 깊이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뒤의 여러 그림들과 연관 지어 보면 결과적으로 소년이 소(도)를 찾겠다는 결심을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사사로운 인심에 의한 안주를 버리고 그 본심을 회복하고자 결심을 하는 장면으로 도심이 인심을 이기는 최초의 수도과정이다.

 

나) 두 번째, 세 번째 심우도

  ▲ 9폭 심우도 2

  ▲ 9폭 심우도 3

 

이 그림에는 산 속에 작은 냇가가 하나 보이면서 그 건너의 좁은 오솔길에 소의 발자취만 남아 있는데, 소년이 그 냇가를 건너 소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에 있는 작은 시냇물은 세속과 속세의 경계를 의미하고 소의 발자취는 곧 도의 가르침이며 신명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6폭의 심우도에서는 이 장면에 「봉득신교(奉得神敎)」라고 제목을 붙였다.

 

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심우도

  ▲ 9폭 심우도 4

  ▲ 9폭 심우도 5

 

6폭 심우도 중 「면이수지(勉而修之)」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천둥 번개가 치면서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소년이 좌절하지 않고 절벽 너머에 있는 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쉼 없이 꿋꿋하게 그 발자취를 따라 가고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의 궂은 날씨는 소년이 수도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난관을 의미하며 이러한 상황에서도 수도자는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이 장면에서 소가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절벽 너머에 있으면서 소의 뒷부분만 보이고 있다. 그리고 소의 궁둥이는 누런 빛깔을 띠고 있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누런 빛깔이 대부분 제거되고 소의 흰 빛깔이 상당히 드러나 있다. 이에 대한 이유는 상술하였다. 또한 관찰자들은 이 그림에서 소의 전체 형상이 왜 드러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릇 도심과 인심이 정밀하게 분리되어야 도심의 전체가 훤하게 드러나는 법인데 여기서는 아직도 양자가 거칠게 분리되어 서로 조금씩 섞이어 있는 상태이므로 소의 전체형상이 사사로운 인심에 가려져 완전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다. 즉 아직 유정(惟精)의 일이 완성되지 않은 탓이라 하겠다.

 

라) 여섯 번째 심우도

  ▲ 9폭 심우도 6

 

6폭 심우도의 「면이수지」와 「성지우성」 사이의 중간적 상황에 해당하는 그림이라고 하겠다. 이 그림 상에는 소가 등장하지 않는 관계로 혹자는 이 장면은 도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하기도 하고, 영도자의 화천을 예시하는 그림이라고 해석하는 등 논란이 많으나 심우도의 전체적인 진행상황을 통일성 있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심우도의 그림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수도의 경과에 따라 소와 소년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이 장면에서는 소년이 앞의 그림들에서는 가지고 있지 않던 소고삐를 갑자기 손에 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고삐는 소를 묶어두는 용도 이외에 다른 용도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쯤에서 이 그림의 상황을 정리하면, 소년이 부지런히 수도한 결과 소(도심)와 소년(인심)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져서 이제는 소를 줄로 묶어서 잡을 수 있는 거리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따라서 소년의 바로 수도에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져 소를 잡을 수 있는 방편을 스스로 터득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이 그림에 소는 등장하지 않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소는 실제로 소년의 바로 앞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나 소년을 크게 부각시켜 그렸기 때문에 단지 그림 상에서만 소가 잘려나간 상태로 그려진 것뿐이다. 소년을 크게 부각시켜 그린 것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소년이 고삐와 같은 수단을 동원할 만큼 수도에 대한 중요한 요령을 자득하였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더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의미도 있다. 따라서 이 장면은 심우도의 전체적 상황을 통일성 있게 추리하면서 마음으로 보아야 하겠다.

 

마) 일곱 번째 심우도

 

  ▲ 9폭 심우도 7

 

6폭의 심우도중 「성지우성(誠之又誠)」에 해당하는 그림이다. 심우도의 전체적 논리 전개상 이 그림과 앞의라)항의 그림 사이에 또 한 폭의 심우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앞의 라)항의 심우도에서는 소년이 고삐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 아직 소를 묶어 두지 않은 상태이므로 그 다음은 당연히 소년이 고삐를 이용하여 소를 묶어서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 연출되어야 한다. 아직도 소고삐의 길이에 해당하는 만큼의 간격이 있어서 도망가려는 소와 이를 저지하려는 소년이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장면의 심우도는 불가의 사찰벽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장면을 통해 소와 소년이 더욱 친숙해져서 이제는 소를 고삐로 묶어두지 않아도 도망가지 않는 「성지우성」의 장면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지는 앞에서 고찰한 바 있는 「유정(惟情)」의 과정이 완성된 상황으로 도심과 인심이 조금도 섞임이 없이 정밀하게 완전히 분리된 상태이다.

 

바) 여덟 번째 심우도

 

  ▲ 9폭 심우도 8

 

이 장면은 6폭 심우도의 「도통진경(道通眞境)」에 해당하는 그림으로 소년이 소를 타고 있어 도와 사람이 둘이 아닌 하나의 경지, 즉 소와 사람이 서로 조화(調和)를 이루고 있는 상태임을 표현하고 있다. 이 장면은 유가에서 말하는 유일(惟一)의 초입단계이다. 반드시 도심으로 하여금 일신의 주장이 되게 하고 인심으로 하여금 매양 명령을 듣게 하여 위태로운 것이 편안해지고 은미한 것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이러한 「유일」의 상태를 일러서 「도즉아 아즉도(道卽我 我卽道)」의 경지를 정각한 상태라고 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현 상태는 신인조화(神人調和) 또는 성정조화(性情調和)의 초입단계이므로 견고하지는 못하여 자칫 잘못하면 사람이 소에서 떨어질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와 사람의 관계를 매우 견고하게 하는 수도과정이 반드시 후행되어야 한다.

 

사) 아홉 번째 심우도

 

  ▲ 9폭 심우도 9

 

6폭의 심우도 중 「도지통명(道之通明)」에 해당하는 그림으로 심우도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장면에는 소는 등장하지 않고 앞서 소 등에 타고 있던 어린 소년이 어느새 성숙한 어른으로 변화 되어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있으며 주위에는 학과 불노초들이 그려져 있어 불노장생을 상징하고 있다. 여기에 소가 등장하지 않고 성숙한 어른만이 등장하는 이유는 도심과 인심이 완전히 하나로 통일되어 그 소이연을 알 수 없는 상태인 신인조화(神人調化) 또는 성정조화(性情調化)의 성숙된 경지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도통진경의 상태는 신인조화 또는 성정조화를 이룬 초입의 상태이므로 소와 사람의 밀착이 견고하지 못하여 사람이 스스로 또는 제3자의 위해를 받아도 소에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위험을 제거하려면 소와 사람이 절대로 분리될 수 없을 만큼 견고하게 합해져서 그 소이연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하나로 통일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태는「도즉아 아즉도」의 경지가 완성되어 임의용지 할 수 있고 천지와 더불어 생육에 참여할 수 있는 경지로 추측되며 《전경》상에서 보이는 『絲桐蕉尾誰能解(사동초미수능해) 竹管絃心自不離(죽관현심자불리)』의 경지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경지를 유가에서는 윤궐집중(允厥執中) 또는 지성여신(至誠如神)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끝맺는 말

 

심우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신과 인간, 또는 성(性)과 정(情) 또는 도심(道心)과 인심(人心)을 조화(調和)하여 종국적으로 조화(調化)에 이르게 하는 일련의 수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곧 의(義)를 정밀히 하고 인(仁)을 익숙하게 하는 과정으로 유가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유정(惟精)과 유일(惟一)을 통하여 집중에 이르러 신과 같아지는 수도과정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심우도는 간단하지만 심오하게 마음의 묘를 논한 것이기 때문에 그림 자체로만 감상하려 한다면 그림의 부분적 단절성을 극복하기 어려워 그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되기 어렵다고 하겠다. 따라서 반드시 논리에 순종하고 그림의 전체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마음으로 감상하여야 심우도의 진수를 온전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순회보 85호, 보정 대흥 1방면 강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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