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홈으로  사이트맵  이메일  English
> 자료실 > 교화자료실
 

제목 [신선도인 이야기] 24. 묵자
첨부파일1   첨부파일2  

 

묵자(墨子)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송(宋)나라 출신 철학자이다. 이름은 적(翟)이다. 초기 전국시대에 제자백가 중 묵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핵심사상은 겸애(兼愛)이다.

 

묵자는 유가가 봉건제도를 이상으로 하고 예악(禮樂)을 기조로 하는 혈연사회의 윤리를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검약(儉約)을 숭상하고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지향하여 실리적인 지역사회의 단결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주장은 유가로부터 ‘아비도 몰라보는 집단’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묵자는 유교와 대립하였다. 그 이유는 유교의 허례허식이 백성들의 이익을 저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은 여러 나라에서 쓰였으나, 진나라가 집권하자 사상적 선호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묵자는 농성(籠城)의 달인이어서 초나라의 공격을 아홉 번이나 막아내었다. 굳게 지킨다는 뜻의 묵수(墨守)가 여기서 유래되었다.

공수반(公輸般)이라고 하는 자가 초(楚) 나라를 위해서 운제(雲梯)라는 도구를 만들어서 이것으로 송나라를 공격하기로 했다. 묵자는 이 말을 듣고 초나라를 찾아갔다. 발을 다쳐 입고 있는 옷을 찢어 발을 싸매면서 7일 7야를 걸려서 초나라에 도착했다. 묵자는 공수반을 만나서 그를 설득했다.

 

『그대는 운제를 만들어서 이것으로 송(宋)나라를 치려고 하고 있지만 송나라에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인가. 그대의 나라에는 영토(領土)에 여유가 있지만 인민(人民)이 부족하다. 그런데 좀 더 여유가 있는 토지(土地)를 얻기 위해서 그 부족한 인민을 죽이면서 싸운다는 것은 지혜롭다고 말할 수 없다. 또 송나라는 아무런 죄도 없는데 그런 나라를 친다는 것은 어질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이런 것을 잘 알면서 왕에게 간(諫)하지 않는 것은 충성 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불의를 간해서 왕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것은 의지(意志)가 견고(堅固)하다고 할 수 없다.』

 

공수반이 대답했다. 『나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그대가 대신 왕에게 말씀드려 주십시오.』

이에 묵자는 왕을 뵙고 말했다.

 

『지금 여기에 이러한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훌륭한 수레가 있는 것을 버려두고 이웃집에 있는 깨진 가마를 훔치려 합니다. 자기의 비단옷은 버려두고 이웃집에 거친 베가 있으면 그것을 훔치려 합니다. 자기의 아름다운 음식은 버려두고 이웃집의 지게미가 있으면 이것을 훔치려 합니다. 이는 대체 어떠한 종류의 사람입니까?』

 

왕이 대답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필시 미친 사람일 것이오.』

 

『초나라에는 운몽(雲夢)의 사슴, 장강(長江)·한수(漢水)의 물고기와 거북이 있어서 천하의 자원(資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송나라에는 꿩도 토끼도 붕어도 없습니다. 이는 곧 아름다운 음식과 쌀겨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초나라에는 소태나무·가래나무·녹나무가 있으나 송나라에는 두어 길되는 나무조차도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비단옷과 누더기 옷을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왕께서 또 송나라를 치려는 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사온데 그것은 이와 같은 일이옵니다.』

 

『좋소. 하지만 공수반은 이미 운제를 만들어 기어이 송나라를 친다고 말하고 있소.』

 

이에 묵자는 공수반을 만나 병법게임을 하기로 했다. 묵자는 띠를 풀어서 성(城)으로 삼고 두건을 가지고 병기(兵器)로 삼았다. 공수반은 성을 치는 작전(作戰)을 수시로 변경하여 공격했으나 묵자는 그럴 때마다 이것을 막아냈기 때문에 공수반의 공성(功城)의 병기는 동이 났지만 묵자의 수비는 충분히 여력(餘力)이 남아있었다.

 

공수반이 말했다. 『나는 그대를 공격할 수단을 알고 있지만 그것은 말하지 않을 것이오.』

 

이에 묵자도 대답했다.

 

『그대가 나를 공격할 수단이라면 나도 그것을 알고있지만 그것은 말하지 않겠소.』

 

이때 왕이 그 까닭을 묻자 묵자가 대답했다.

 

『공수반의 생각으로는 다만 나 하나만 죽으면 송나라는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의 제자 금활리(禽滑釐) 등 3백 인은 이미 저의 방어의 병기를 가지고 송나라 성 위에서 초군(楚軍)의 침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령 제가 죽었다고 해서 이것을 중지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에 초나라는 출병(出兵)을 중지하고 두 번 다시 송나라를 공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묵자는 나이 82세가 되었다.

 

『세속(世俗)의 일은 이제 모든 것을 알았다. 영화스러운 자리도 언제까지나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세속을 버리고 적송자(赤松子)와 사귀는 것으로 하리라.』

 

그는 주적산(周狄山)으로 들어가 도법(道法)에 전념하고 신선을 동경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여러 지방의 산간에서 어떤 사람인가가 글을 외우는 소리가 가끔 귀에 들렸다. 묵자가 잠자리에 든 뒤에도 어떤 사람인가가 나타나서 옷을 발에 걸쳐 주기도 했다.

 

묵자 앞에 갑자기 한 신인이 나타났다. 묵자가 일어나서 물었다.

 

『그대는 산악(山岳)의 신령(神靈)이십니까? 아니면 세상 밖에 있는 신선이십니까? 바라건대 자주 여기에 오시어 도(道)의 대요(大要)를 가르쳐 주십시오.』

 

신인(神人)은 말했다.

 

『그대가 도를 좋아하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와서 뵙는 것이오. 그런데 그대는 무엇을 구하는 것이오?』

 

『원컨대 천지와 함께 끝까지 장생(長生)하고 싶습니다.』

 

이에 신인은 소서(素書) 및 주영환방(朱英丸方)·도령교계(道靈敎戒)·오행변화(五行變化)〉 등 전 25편을 주면서,

 

『그대는 선골(仙骨)을 가지고 있고 또 총명하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면 장차 성취할 것이오. 이제 스승을 기다릴 필요가 없소.』

 

묵자는 큰절을 하고 이것을 받아가지고 약을 조제(調製)해서 마시고 신선이 되었다. 이에 그 요지(要旨)를 따서 《오행기(五行記)》를 만들었다. 묵자는 장차 지선(地仙)이 되어 은둔하여 세상을 피했다. 한나라 무제(武帝)가 예물(禮物)을 갖추어 양위(陽違)라는 사자를 보내어 묵자를 초빙(招聘)하고자 하였으나 묵자는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의 안색은 항상 50세쯤 되어 보이고 오악(五嶽)을 주유(周遊)하여 한 곳에 정주(定住)하는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이전글 [신선도인 이야기] 23. 좌자 2010-11-09
다음글 [논단] 심우도(尋牛圖)에 관하여 2011-02-22
 목록보기


 
 Top
 영농법인 아그로상생  대순회보  이메일서비스
 산하기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