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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종단사 연구에 대한 고찰-도주님의 종통계승과 무극도 창도에 관하여

 

종단사 연구에 대한 고찰

 

-도주님의 종통계승과 무극도 창도에 관하여-

 

 

 

도주님 종통 계승은 천부의 신성성 지녀

 

무극도는 종단사의 시원 연구와 이해가 선행돼야

 

귀국후 첫 공사 안면도에서 이루어져

 

무극도 창도시 정하신 종지 신조 목적은 영원한 수도의 대원칙

 

 

 

Ⅰ. 들어가는 말

 

도주님의 행적이 기록된《전경》<교운 2장>편을 살펴보면,1909년에 만주로 봉천명하시어 1917년 상제님으로부터 천부의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시고 귀국하신 후,1925년 전라북도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을 건립하시기까지의 과정이 <교운 2장>의 전체 67구절 가운데 무려 ⅓이 넘는 29구절(교운 2장 4절~32절까지)에 걸쳐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우리에게 이 시기에 대한 중요성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하게 설정된 이 시기 종단사에 대한 연구가 지금까지 명확한 구분이나 뚜렷한 성과 없이 지나쳐버린 경향이 있음을 볼 때 종단 역사의 시원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절실히 요구된다.

 

종단의 역사가 이제 83년(1917년을 기준)에 접어들었고,상제님께서 이 땅에 강세하신지 어느덧 134년에 들어서 있는 지금이 종단사에 대한 이해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으며, 본 논문에서는 특히 1917년 도주님의 종통 계승으로부터 1925년의 태인도장 창건까지의 종단사를 중점적으로 다루어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한 종단사에 있어서 시론이 되고자 한다.

 

다음 Ⅱ장을 통해서 먼저 도주님께서 1909년 만주로 망명하시면서 봉천명(奉天命)하신 후부터 그 천부의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신 1917년과 1917년 귀국 이후부터 1925년 태인에 도장을 건립하시여 종단 무극도를 창도하시기까지의 과정들에 대해서 살펴보고,다음으로 이 시기에 대한 종단사에 있어서의 구분과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 시기의 중요성을 강조해보고자 하는 데에 본 논문의 목적이 있다.

 

 

Ⅱ. 종통계승과 무극도창도

 

도주님께서 봉천명하신 1909년으로부터 화천하신 1958년까지의 50년간은 상제님께서 이미 천지공사에서 설정하신 「오십년 공부종필」(공사 3장 37절, 교운 2장 66절)의 도수로써 우리 종단에 있어서는 절대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도주님의 오십년 공부는 상제님의 유의(遺意)를 이어받으셔서 천지공사를 수행하신 도주님의 천부적 종통 계승의 신성성(神聖性)을 의미하는 것이며, 도주님으로부터 유명으로 종통을 계승받으신 도전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천지공사의 연속성(連續性)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중요한 기점이 되는 1909년의 봉천명과는 별도로 현재 우리 종단의 시원을 도주님께서 감오득도하시고 종통 계승의 계시를 받으신 1917년으로 설정하였다.

 

이것은 『본회의 창도주는 조정산성사이시다.』(도헌 제2조)라는 구절과 『연원은 강증산상제의 대순하신 유의의 종통을 계승한 조정산도주의 연원이라 한다.』(도헌 제13조)라는 구절에서 바로 현 종단 대순진리회가 도주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살피고, 다음으로 『대순진리회는 조정산 도주께서 만주 봉천에서 강성상제로부터 그 천부의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신 데서 비롯하여』(요람 5쪽)와 『1917년(정사년 23세시) 2월 10일에 입산공부하시던 도주 조정산께서는 강증산 상제의 대순진리에 감오득도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시다.』(요람 12쪽)라는 구절을 통해서 볼 때 현재 우리 종단의 시작을 도주님께서 종통 계승의 계시를 받으신 1917년으로부터 보아야 함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이러한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봉천명과 입산수도

 

ㆍ1909년 4월 28일 : 만주로 가심(봉천명)

ㆍ동년 4월 이후 : 구세제민의 뜻을 품고 입산수도하여 공부에 진력하시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후 그 유지를 계승하신 분은 도주님이시다. 이는 『대순하신 유지를 계승하여 오십년 공부 종필로써 전하신 조정산 도주의 유법을 숭신하여 귀의할 바를 삼고자 대순진리회를 창설한 것이다.』(요람 9쪽)에서 전거를 찾을 수 있다.

 

당시 15세의 나이에 만주로 망명의 길을 떠나신 도주님은 이것이 곧 천지공사에 의해 정해진 도수임을 밝혀주셨고, 우리는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천명을 받드신 날을 기념하여 봉천명(奉天命) 치성을 모시고 있다. 이후 도주님께서는 도력에 의한 방법으로 위태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입산수도를 하시게 되었다.

 

 

 2. 종통계승

 

1917년 2월 10일 : 9년간의 공부 끝에 상제님의 삼계대순의 진리를 감오 득도하시다.

ㆍ동년 2월 : 구세제민의 주문(기도주)을 받으시고 조선으로의 귀국을 계시 받으시다.

 

입산수도하시던 도주님께서는 9년의 공부 끝에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감오득도하시고 종통계승의 계시를 받으셨다.

 

도주님께서는 고국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으시고, 수로를 통해 태안을 거쳐 안면도로 들어가시게 된 것이다. 이 해가 1917년이며 현재 대순진리회가 종단으로써 성립된 시원이 바로 도주님께서 감오득도하셔서 상제님으로부터 천부의 종통을 계승하신 때부터라고 보는 것이 본 논문의 관점이다.

 

  

3. 무극도기 : 1917년~1941년

 

본문에서는 전체 무극도기 중에서 태인에 도장이 건립되기 전 시기인 1917년부터 1925년까지의 기간을 「재실기」라는 용어로 규정해보고, 도장이 건립된 1925년부터 1941년 무극도 해산까지의 기간을 또한 「태인도장기」라는 용어를 사용해 보고자 한다.

 

     1) 재실기(齋室期)

 

도주님께서 만주로부터 귀국하셔서(1917년 4월)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을 건립하시기 이전까지의 시기를 재실기라고 규정하고 전체 무극도기의 전반부에 놓고 구분해 보고자 한다.

 

도주님께서는 만주로부터 뱃길를 통해 귀국하시면서, 폭풍을 맞아 태안에 닿았다가 바로 안면도로 옮기셨다. 먼저 이곳 정당리 느락골에 우일재를 지으시고, 공부에 임하시게 되었다. 이때부터 벌써 도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도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설법하시며, 한편으로 포덕을 장려하셨다.

 

이후 김제 원평의 황새마을 근처 통사동 이준세의 재실인 영모재로 거처를 옮기셨고, 계속적으로 도수에 따른 포교와 수도에 전념하시다가 1925년에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을 건립, 완공하게 되어 종단시대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를 재실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태인도장기와 구분해서 살펴보려는 것은 이 시기에 도주님께서는 전국 각지의 명산대천을 편력, 수도하시면서도 주된 공부를 재실에서 하시었기에 편의상 재실기로 시기 구분을 해보았다.

이 시기에 사용된 주요 재실은 다음과 같다.

 

- 우일재(宇一齋) : 안면도 정당리 느락골에 마련하신 재실

- 영모재(永慕齋) : 김제 원평 인근 통사동에 있는 이준세의 재실

- 영성정(靈聖亭) : 밀양 종남산에 있는 선산 김씨의 재실

- 반구정(伴鷗亭) : 경남 함안군 대산면 용화산에 있는 도주님 가문의 재실

 

1917년 이후의 도주님의 행적은 곧 상제님의 가르침을 펴기 위한 천지공사의 종교 활동으로 이해된다. 『… 이때에 도주께서 「개벽후 후천 오만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그 아니 좋을시구」라 하시고 …』(교운 2장 11절) 라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제님께서 행하신 천지공사를 도주님께서 이어나가심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동안에 이미 전국 각처에서는 도주님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따르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었고, 상제님의 누이동생인 선돌부인으로부터 상제님께서 남기신 봉서(封書)를 전해 받으신 이후(1919년 정월 보름) 도주님께서는 상제님 가족들의 동의와 협조아래 둔궤와 상제님 성골을 모셨고, 대내외적으로 상제님의 진리가 계승되었음을 알리시며, 상제님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종교 활동을 착실히 진행시켜 나가셨다.

이 시기 도주님의 주요 행적은 다음과 같다.

 

ㆍ1917년 4월 : 태안에 도착하시고, 안면도에 정착하시어, 우일재를 마련하고 공부에 전념하시다.

ㆍ1918년 가을 : 원평을 거쳐 구릿골 약방에 이르시어, 상제께서 이룩하신 공사를 밟으시다.

ㆍ동년 10월 : 모악산 대원사에 이르시어,『개벽후 후천오만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그 아니 좋을시구』라 하시며, 몇 달 동안을 머무르시고, 가족들은 안면도에서 원평 황새마을로 옮기셨다.

ㆍ1919년 1월 15일 : 정읍 마동 김기부의 집에서 상제님의 누이동생 선돌부인으로부터 상제께서 맡기신 봉서를 받으셨다.

ㆍ동년 5월 : 통사동 재실에서 도수를 보고 계시던 중,둔궤를 찾으라는 선돌부인의 권유를 받으시다.

ㆍ동년 7월 보름 : 금산사에 다녀오시며,『인숙무죄요,개과하면 족하니라』고 하시다.

ㆍ동년 9월 4일 : 보천교 본부에 있는 둔궤를 재실에 옮겨놓으셨다.

ㆍ동년 9월 : 통사동 재실에서 『오도자 금불문 고불문지도야라 믿고 닦기가 어려우니라』 하시고, 대도의 진리를 설법하시여 도를 밝혀주셨도다.

ㆍ1919년 10월 : 부안 변산 굴바위에서 공부하시면서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설법하셨다.

ㆍ1920년 2월 17일 : 재실에서 공부하시던 중 저절로 둔궤가 열려졌다.

ㆍ1921년 7월 7일 : 대원사에서 백일도수를 마치신 날 『이곳이 바로 상제께서 천지신명을 심판한 곳이니라. 아직 응기하여 있는 것을 내가 풀었노라』고 말씀하셨도다.

ㆍ동년 9월 5일 : 구릿골에서 통사동 재실로 상제님의 성골을 모시었다.

ㆍ동년 9월 19일 : 상제님 강세일, 재실에 모여 치성을 올린 후 『시시묵송공산리 야야한청잠실중 분명조화성공일 요순우왕일체동』이라 하셨다.

ㆍ1922년 12월 그믐 : 납월도수에 북현무도수를 이르시니, 문공신 등이 재실에 침입하여 상제님의 성골과 금품을 훔쳐갔다.

ㆍ1923년 1월~3월 : 함안 회문리에 순회하고 밀양 종남산 세천동 김 병문의 집에 가셔서 둔도수를 석달동안 행하셨다.

ㆍ동년 1월 : 주선원과 주선원보란 두 직책을 마련하고 전교의 임무를 담당하게 하시다.

ㆍ동년 6월 23일 : 회문리에서 『금년이 이재신원 계해년이라』고 말씀을 마치고 전교를 내리셨다.

ㆍ동년 6월~9월 : 청도 유천의 박 동락의 집에서 9월까지 단도수를 행하시다.(진인보두법)

ㆍ1923년 10월~ 1924년 2월 중순 : 청도 적천사 도솔암의 칠성각 뒤에 돌단을 쌓고, 천지신명을 응기케 하고 공부를 행하셨다.(단도수)

ㆍ1924년 4월 : 태인에 도장이 마련되었고, 밀양 종남산 세천에서 보시던 둔도수를 마치셨다.

ㆍ동년 여름~5개월간 : 밀양 종남산 영성정에서 폐백도수를 다섯달 동안 계속하시다가 다시 함안 반구정으로 옮겨 마치셨다.

ㆍ동년 11월 : 태인도장에 가셔서 『경(庚)은 변경지이시하고…』라 말씀하셨다.

 

    

 2) 태인도장기

 

이 시기의 처음에 이루어진 것은 도장의 건립이었다. 앞서 재실기에서 태인도장기로의 전환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물이 차면 넘치게 되는 것이 순리이듯 도장의 건립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시기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ㆍ1925년 4월 :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이 이룩되었다. 무극도를 창도하시고,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봉안하고, 종지 및 신조와 목적을 정하셨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점은 바로 종단으로써의 무극도 창도가 구태인 도창현에 이룩된 도장과 함께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극도기에 대한 개념을 정의해볼 수 있는 구절로써,무극도기를 도장이 건립된 년을 기준으로 전기,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1925년이 무극도의 시작이라고 보는 일부의 견해들은 재고(再考)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도장이 창건되면서 공식적으로 무극도라는 종단 명칭을 선포하신 것이지, 이것이 도장 창건 이전의 종교 활동과 연속성이 없는 돌출된 선포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1925년 4월에 이루어진 도장의 창건은 바야흐로 현대화된 종단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役事)이며, 모든 역량이 도장의 창건과 종단의 선포가 가능할 만큼 성장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태인도장이 건립된 1925년부터 도주님께서는 종단으로써의 면모를 강조하고, 종교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것임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셨다. 1917년 귀국이후부터 도장이 건립된 1925년 이전까지의 재실 등에서의 활동에서 더 나아가 본격적인 현대적 종교 활동을 공표(公表)하신 것이다. 이 점은 1925년 이후의 《전경》 기록들을 보면 앞선 시기에 이루어진 활동들과 비교해서 규모와 조직, 내용면에서 차이가 나는 다양한 종교 활동들을 전개하신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도장 건축 규모를 보면 현대의 종교단체의 규모와도 비견할 수 있는 놀라운 성과물이다. 이것은 이전부터 꾸준히 쌓여지고 진척 향상된 종교 활동의 자연스런 결과물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1925년에 반포된 종지(宗旨), 신조(信條), 목적(目的)과 이후 1941년 무극도 해산까지 전개된 각종 종교 활동들은 후일의 태극도(太極道)를 거쳐 현재 대순진리회의 3대 기본사업 및 중요사업과 연결 지어 비교해 볼 때 차이가 거의 없는 원형의 모습들을 이미 당시부터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 당시 무극도의 조직체계와 규모가 이미 완성된 형태의 현대적 종단의 틀을 모두 갖추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Ⅲ. 맺음말

 

그렇지만 무극도 창도에 있어서 가장 큰 의의는 바로 강세하신 강증산 성사의 올바른 신격위가 모셔진 점이다. 도주님께서는 신앙의 대상으로 강증산 성사를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로 모셔서 영대(靈臺)에 봉안하셨다.

 

도주님께서 1925년에 태인도장을 창건하여 무극도를 창도하시고,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로 영대에 봉안하셔서 오늘날 우리들이 올바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신앙체계를 잡아주신 것이다.

또 다른 의의는 바로 종지, 신조, 목적의 선포이다. 종지, 신조, 목적은 무극도 창도 이후 여년이 되어가는 현재까지 변치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할 우리 종단의 목적이자 수도의 대원칙을 제시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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